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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천개의공감

주부의 회식을 허하라

by 식인사과 2018.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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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 시간의 카페 풍경을 보면 여성 주부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대화 나누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내 주변의 카페만 보더라도 낮 1-3시 정도만 되면 카페가 만원이 될 정도로 모여 있는 주부들을 볼 수 있다. 무슨 할 이야기들이 그렇게 많은지 카페는 그들의 목소리들로 금세 가득 찬다. 하지만 3시 이후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카페가 텅텅 비어버린다. 내가 사는 곳은 번화가가 아닌 한적한 거리인데 특정한 시간이 되면 카페에는 신기할 정도로 사람이 많고 저녁만 되면 몇몇 사람들의 개인 작업 공간으로 변한다. 


별 것 아닌 일상의 이런 모습들이 때로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한다. 이슈의 주인공에 있는 여성 주부들은 아이는 학원에 같은 다른 공간에 맡기고 수다나 떨러 온 맘충으로 인식되곤 한다. 그 시간대에 모이는 주부들이 여성이 많은 이유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아빠는 직장일, 엄마는 육아를 포함한 가사일을 해야 한다는 가부장적 시스템이 강하게 작동되는 사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도 가사일을 공평하게 하는 사회가 온다면 이 풍경 역시 변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얼마 전까지는 카페의 그런 풍경을 보면서 유쾌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아니었다. 특별한 목적 없이 모여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은 내 성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런 모습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잘못된 사회적 인식 속에서 오래 생활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모습을 유쾌하게 바라보지 않은 내 스스로를 유쾌하게 바라보기 어렵게 됐다. 나의 시선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한 번도 제대로 된 질문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주부들에게 낯 시간의 카페 공간은 하루 종일 가사 일을 한 후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아닐까. 직장인들이 하루 일을 끝내고 저녁에 회식을 하며 회포를 푸는 것처럼 이들도 낮 시간의 빈 시간을 활용해 회식을 하며 마음을 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인식을 하고 다시 카페 풍경을 보니 제법 익숙한 모습이 펼쳐졌다. 대포집에 술 한잔 걸치며 마음껏 소리도 지르고 왁자지껄 하룻동안 받았던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직장인들의 모습이 그 곳에 있었다.


가끔 낮 시간 카페에서 진상을 부리는 주부들의 모습이 이슈화되기도 하지만 그보다 밤 시간 술집에서 진상을 부리는 직장인들의 모습이 더 많을 것이다. 진상 자체는 남성과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의 예의의 문제다.


남성과 여성의 역할 분배 구도, 직장일과 가사일의 기준 등의 근본적인 삶의 환경이 바뀌지 않은 이상 당분간은 이런 익숙한 풍경들은 반복될 것이다. 새로운 삶의 형태를 꿈꾸고 있다면 서로의 모습을 원색적으로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 주부의 회식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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