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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도서관/놀이터생각

우리동네 '아이누리놀이터' | 안양 한가람어린이공원 놀이터

by 식인사과 2020.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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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는 모래와 통나무 구조물로 된 놀이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통나무를 엮어 만든 거대한 놀이 시설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는 놀이터는 어렸을 때 친구들끼리 술래잡기를 하면서 놀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공간이었다. 학교 일과가 끝나면 언제나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모였고 땅따먹기, 모래성 쌓기, 술래잡기, 구름사다리 타기 등 다양한 놀이들을 통해 재미있게 놀았다. 


그런데 요즘 놀이터들을 보면 어디를 가도 똑같은 놀이터밖에 볼 수 없다. 아주 조금씩 모양이 다르기는 하지만 거의 똑같다. 마치 붕어빵 기계에서 붕어빵을 뽑아낸 것 같이 똑같다. 이런 놀이터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모험보다 안전이 제일 우선시 되어 있는 놀이터의 구조는 구조 자체에서 어떻게 하라는 안내가와 설명이 다 되어 있기 때문에 어린이의 상상력과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안전하게 만든 놀이터가 사실은 아이들에게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기존의 것을 반대로 해보고 가보지 말라고 하는 곳은 더 가보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용도와 방향성을 가진 놀이 기구들은 아이들이 본래 용도와는 다르게 이용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다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래 이미지는 내가 동네 놀이터를 다니면서 직접 촬영한 사진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리 주변에 놀이터가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처음 지도를 보고 하나하나씩 찾으려 다녔는데 아파트 단지 안에는 한 동에 1-2개씩 꼭 놀이터가 있었다. 문제는 그 놀이터의 구조와 형태가 모두 똑같다는 것이다. 아파트를 지으면서 건설사에서 옵션으로 만들다 보니 하나같이 똑같이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좋은 놀이터를 발견했다. 원래는 이번 주에 서울시에 있는 창의어린이놀이터들을 방문하려고 일정을 잡아두었는데 지난 주에 갑자기 코로나가 크게 확산이 되면서 탐방 일정을 미뤘다. 아쉬운 마음에 동네 놀이터 먼저 탐방을 하다가 정말 우연히 발견했는데 정말 반가웠다. 

 

 

우리동네 창의어린이놀이터 : 모먼트

안양에 있는 한가람어린이공원 내 놀이터

m.blog.naver.com

 

 

 

창의어린이놀이터는 서울시에서 2015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어린이 놀이 환경 개선 사업명이다. 기존의 시설물 중심의 놀이터에서 놀이활동 중심의 놀이터로 변경하는 사업으로 주변의 반응이 좋아서 점점 사업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에는 100여 곳이 넘는 창의어린이놀이터들이 있다.

 

전라남도 순천에서도 '기적의 놀이터'라는 이름으로 창의놀이터를 만들어가는 사업이 있다. 아마도 국내의 유일한 놀이터 디자이너라고 볼 수 있는 편해문씨가 총괄 기획을 맡고 있는 이 사업은 역시 시민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점점 규모를 늘려가고 있다. 하지만 경기도에는 아직 이런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곳은 없다.

 

 

 

기대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처음 한가람어린이공원 놀이터를 발견했을 때 매우 반가웠다. 동네에서 발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콘크리트 아파트 단지 사이에서 모래와 잔디로 구성된 놀이터를 볼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새롭게 다가왔다. 이 놀이터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것인지 나중에 안양시 공원 관리과에 연락해서 알아볼 생각이다. 

 

 

 

모든 아이들은 물을 좋아한다. 물만 있으면 언제나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게 바로 어린이다. 하지만 도시에서 일상적으로 물을 볼 수 있는 곳은 공공화장실 밖에 없다. 놀이터에 이런 물을 쓸 수 있는 시설을 둔 것은 어린이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설계했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를 보고 모래로 된 놀이터를 거의 십년 이상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렸을 때 그렇게 재미있게 놀았던 모래 놀이터인데 이상하게 생소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이 모래를 밟고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보면서 금세 동심을 찾을 수 있었다. 탄성 매트와 플라스틱 구조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청량함이 그곳에 있었다. 

 

 

 

독일의 유명한 놀이터 디자이너인 귄터 벨치히는 '통제 가능하고, 인식 가능하고, 조절할 수 있는 위험이 허락되는 곳'이 좋은 놀이터라고 말한다. 더불어 놀이터는 '발견할 무엇이 있고, 숨어 있지만 완전히 막히지는 않아 타인이 아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곳, 달리는 기분, 흥미, 필요에 따라 변화의 가능성을 주는 곳'이어야 한다고 한다. 

 

통제 가능하고, 인식 가능하고
조절할 수 있는 위험이 허락되는 곳

 

요약하자면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비구조화된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놀이터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놀이 기구가 한 가지 방식으로만 놀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놀이터들을 아이들은 좋아하리 없다. 공공놀이터가 외면받는 이유 중의 하나다.

 

하지만 아래와 같은 비구조화된 놀이터라면 어린이는 매일매일 즐겁게 놀 수 있다. 실제로 먼저 찍은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한 명도 없었지만 한가람어린이공원 놀이터에는 어머니들이 아이들과 나와서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미끄럼틀도 일반적인 요즘 놀이터들보다 훨씬 더 길게 제작이 되어 있다. 얼핏 위험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중간에 한 번 멈출 수 있는 지점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

 

 

 

미끄럼틀을 더 길게 만들기 위해 구조물을 높이 올리는 것이 아닌 잔디 언덕을 이용해 높이 차이를 만들었다. 잔디 언덕은 푹신푹신해서 아이들이 넘어져도 다치지 않고 구조물 자체가 높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은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다. 

 

 

 

안전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이런 식의 문구는 별로라고 생각한다. 제일 좋은 것은 올라가도 다치지 않게 설계하는 것이다. 금지어는 놀이의 특성과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유아를 위한 아주 낮은 형태의 미끄럼틀도 있다. 부모님들이 아기의 손을 잡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잔디언덕과 높이가 잘 배치되어 있다. 구조물 내부를 보니 목재 원목과 MDF, 철제 고정쇠가 섞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부분은 조금만 더 비용을 들여서 모두 목재로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는 아이들이 모래를 가지고 논 흔적이다. 모래는 재질 자체만 놓고 보면 그렇게 특별한 소재가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모래를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한다.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단순한 특성 때문에 모래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가장 자극하는 매력적인 소재다. 

 

 

 

손으로 직접 만져본 모래는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직접 만져보고 나서야 내가 이 촉감을 매우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새 내 머릿속에는 통나무 구조물에서 구름다리 위를 척척 걸어가는 어릴 적 내 모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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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는 놀이를 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공간 자체가 잘못 설계되어 있으면 어떤 놀이를 해도 재미가 없다. '놀이'라는 소프트웨어도 중요하지만 '터'라는 하드웨어도 중요한 이유다. 나는 앞으로 국내에 있는 모든 놀이터에 다니면서 리뷰를 쓸 예정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직접 놀이터를 만들어서 어린이들에게 끝내주게 재미있고 즐거운 놀이터를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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