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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관객/잃어버린연극

[판소리] 전통의 소리- 이자람의 '사천가'

by 식인사과 2013.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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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난 이 공연을 보다가 인티미션 시간에 페이스북에 이런 말을 남겼다. 이자람씨가 선생님 반열에 들 20년 후가 되면 '사천가'가 지금의 판소리 여섯마당과 당당하게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작품이 될 것 같다고- 그리고 모든 공연을 본 후 난 그 말이 꼭 실현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만큼 이 공연, 좋다. 좋은 것 이상의 좋음이지만 어떤 말로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기에 그냥 '좋다'라는 표현이 지금은 적절한 것 같다.

 

 

 

 

충무 아트홀은 이번에 처음 가봤다. 신당역 9번 출구에서 나오면 걸어서 1-2분 거리 안에 충무아트홀이 있다. 사천가는 중극장 블랙에서 했는데 원형무대와 트러스트 무대가 혼합된 극장 형식이 이번 공연과도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사천가는 내가 대학에서 연극공부를 할 때 처음 초연을 했다. 그리고 난 2008년 졸업작품 연출로 '사천의 선인'을 했었는데 그것 때문에 이 작품이 나에게 더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 당시 브레히트의 소외효과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을 무대 위에 표현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드라마루트기를 한 친구와 엄청 머리 싸매고 고민했던 것 같다. 그 때 이자람씨의 '사천가'를 알게 되었는데 이미 공연은 끝난 상태였다. 왠지 판소리의 공연 요소들과 브레히트의 소외 효과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당시에는 확인하지 못했다. 

 

 

 

 

이번 공연을 보고 왜 사천가가 대중들에게 그렇게 사랑을 받았는지 알 것 같았다. 브레히트는 대중들이 극에 몰입해서 빠져들지 못하도록 다양한 소외 효과 기법을 썼다. 그래서 극에 빠져들라고 하면 극 중 인물이 현실의 인물이 되어 사람들에게 질문을 한다는 등의 기법을 쓰기도 했다. 이자람씨가 처음 공연을 창작할 때 그런 모든 것을 고민해서 만들었을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판소리라는 형식 자체가 브레히트의 소외효과를 이미 충분히 함축하고 있었고 이자람씨는 판소리의 모든 요소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소리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 것 같다.

  

 

 

 

일찍 도착해서 1층 테이크아웃 커피점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더니 이렇게 사천가 홍보 문구가 담겨있다. 커피를 먹으면서 공연이 얼마나 재미있을까 어쩌면 너무 기대를 해서 재미없다고 생각하면 어쩌나-라는 제법 쓸데 없는 생각을 꽤 많이 했던 것 같다 ㅋㅋ

 

 

 

 

그렇게 보고 싶던 공연을 6년이 지나서야 보게 되다니 감회가 새롭다. 천천히 팜플렛을 읽어보는데 스탭분들 중 몇 분이 학교 선배님들이어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예전에는 내가 아는 사람들을 팜플렛에서 발견하면 '나는 여기서 뭐하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는 것을 보면 내 현장에서의 내 목표가 생긴 것 같다. 좋은 예술이 존재하려면 좋은 관객이 필요해!

 

 

 

 

사천가를 처음 만들었을 때의 나이가 스물여덟이라니 정말 대단한 것 같다. 판소리에 대한 진정한 애정과 노력, 이야기꾼으로서의 탁월한 감각이 아니었다면 브레히트의 3시간이 넘은 이 장편극을 이렇게 아름답게 각색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후기를 남기면서 이자람의 '사천가'는 분명 우리나라의 좋은 '전통' 판소리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더 강하게 드는 것은 왜일까 ㅎㅎ

 

 

 

 

판소리의 가장 큰 특징은 아무리 중요한 내용이라도 재미가 없으면 아니리 한방으로 훌쩍 넘어가고 사소한 부분이라도 재미있는 부분은 소리로 쭉 뽑아내기도 한다. 그래서 판소리의 언어는 순수하기보다는 소박하며 우아하기보다는 투박한데 이런 요소들 때문에 일제식민지를 거치기전까지 오랜 기간동안 대중예술로서 사랑받아왔다고 생각한다.  이번 공연에서도 그런 판소리의 재미가 잘 나타난 것 같다. 내가 사천가가 판소리의 전통이 될 것이라고 보는 것도 여기에 있는데 뭔가 대단히 새로운 것들이 들어온 것 같지만 사실 '사천가'는 판소리의 원형과 본질을 가장 잘 이해하고 무대 위에 표현한 공연이다. 거기에 현재 대중들의 언어와 관심사를 극 속에 잘 버무렸다. 대중들의 희노애락을 가장 잘 반영한 '사천가'는 그렇기 때문에 전승에 머물러 있는 다른 판소리보다 훨씬 더 '전통'적이다.

 

 

 

 

그리고 판소리는 철저하게 1인 예술이라는 것도 이 공연을 통해 더 잘 느끼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아쉬웠던 부분은 세 명의 배우들- 이자람씨가 쉴 시간을 마련해주는 것 이외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이자람씨의 카리스마 때문일수도 있고 아니면 1인 다역을 하는 판소리만의 특징 때문일 수도 있고 또는 연출의 과도한 욕심이었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세 명의 배우들이 열연을 하면 할수록 나의 한숨은 더욱 깊어졌다. 그래도 머리 숙여 인사하는 네 명의 배우들에게 박수를! 정말 많은 분들이 기립에서 박수를 치는데 나도 괴성을 지르면서 환호했다 ㅋㅋ

 

 

 

 

서비스 영상으로 이자람씨가 프랑스에 가서 공연한 유투브 영상을 올린다. 더운 여름 속풀이 할 곳이 없다면 꼭 사천가를 보시라- 통쾌하고 유쾌한 이자람씨의 일갈을 들을 수 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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