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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천개의공감

아빠, 안녕.

by 식인사과 2014.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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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추석 아버지 산소에 갔다가 찾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아름드리 소나무숲으로 울창했던 산소 근처의 풍경이 몇 번의 태풍이 휩쓸고 간 후 생태계가 완전히 변했기 때문이다. 마치 열대 우림에서나 자랄 법한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풀들이 온 숲을 다 뒤덮고 있었다. 내 키보다 더 큰 덩굴숲들을 형님이랑 함께 정리를 해보려 끙끙댔지만 결국 남은 것은 풀에 스치고 베인 팔다리의 상처 뿐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철수를 해야 했고 겨울에 와서 다시 손을 보기로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돌아가시기 전 집에서 지내고 싶다는 아버지의 의지에 따라 아버지는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셨고 형과 나는 매일밤 아버지 곁에서 잠을 잤다. 새벽 갑작스럽게 들리는 어머니의 절규에 아마도 형과 함께 문 뒤에 숨어서 막 울었던 생각이 난다. 죽음이 뭔지 알고 울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 당시 내 나이는 10살, 죽음이란 것을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내가 이제 아버지가 될 나이가 되니 아버지의 존재가 새삼 크게 다가온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핏덩이 같은 두 어린 자식들과 빚을 남기고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아버지의 심정은 정말 아팠을 것이라고 감히 짐작해본다. 그래도 어머니는 세상의 풍파에 흔들리지 않고 어린 두 아들을 올곧이 키워내셨고 매해 산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아버지와 속으로 이야기를 나누신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렸을 때는 짐작도 하지 못한 삶의 깊은 이야기들을 이해하는 과정인 것 같다. 철없던 시절, 세상 일이 바쁘다고 아버지 산소에 가는 것을 귀찮아했던 나를 이제서야 반성해본다. 아빠, 내년에도 꼭 올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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