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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학교/선생과교사

어느 신입교사의 이야기

by 식인사과 2013.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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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에서는 신입교사를 자주 뽑는 편이다. 대안학교 연대공간인 '대안교육연대' 사이트에 가보면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교사를 뽑는 글들이 자주 올라오는데 학교 수가 점점 많아지는 것인지 아니면 그만 두는 사람이 많은 것인지는 자세히 모르겠다. 이래나 저래나 배움터길은 교사회의 변화가 비교적 안정적인 편이다. 초기 교사들 중 아직 절반이 학교를 지키고 있고 그 다음에 온 교사들도 5년 째 '버티고' 있으며, 이제 새로운 교사들이 들어오면서 활력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교사워크샵이 끝나고 뒤풀이 때 난 수줍게 이런 말을 해버렸다. "이 상태로 앞으로 쭉 같이 갔으면 좋겠어요" (아잉- 부끄러워 @.@;;)


아무튼 밑의 글은 작년에 새로 들어온 한 신입 교사가 진로 연수를 받으면서 쓴 글이다. 작년 한 해 동안 길동무 강사로 작곡 수업을 맡아주셨던 분인데 본인 말에 의하면 '배움터길이 너무 좋아서' 교사 모집에 지원을 하셨다고 한다. (난 그 말이 천년만년 갈 것이라는 것을 무조건 믿는다 ㅋㅋㅋ) 그렇게 들어온 분이라서 그런지 배움터길 일상을 매우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흡수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글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나태해졌구나 라는 생각에 머리 속에만 담아두었던 새해 다짐을 이것저것 다시 뒤적뒤적, 작년에 써놓은 버킷리스트도 뒤적뒤적이게 되었다. 최근에 힘든 상황이 있어서 일도 손에 안잡히고 생각도 뒤죽박죽에 그냥 방콕하고 뒹굴뒹굴- 칭얼대면서 '아무 것도 하기 싫어- 안할거야!'만 외치고 있었는데 이 분의 글을 읽고는 내가 처음 이 곳에 들어올 때가 불현듯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때 뭐라고 했더라... 아마도 이런 말을 스스로에게 했던 것 같다. '처음처럼, 그리고 마지막처럼' 내게 주어진 것에 언제나 최선을 다하기- 아무튼, 좀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나도 내 스스로에게 무언가 약속을 하고 싶어 이 글을 쓰신 분의 동의를 얻어 이 곳에 글을 옮기게 되었다. 진심이 담긴 좋은 글이다. 


대학교 졸업 후 2년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공연음악 작곡가를 시작으로 음악감독, 합창단 반주자, 문화센터 음악 강사, 음악교재 연구원, 오케스트라단 편곡가, 어린이합창단 매니저 등 많은 활동을 통해 총 21편의 뮤지컬·연극 작품에 작곡으로 이름을 올렸고 약 300곡이 넘는 작·편곡 작업을 했으며 100곡이 조금 안되는 악보 사보 일도 했고 50곡이 조금 넘는 엠알 작업도 의뢰 받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생후 6개월 아기부터 75세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불문하고 피아노를, 작곡을 통해 음악을 알려 드렸고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고 무대에 올라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 모든 일이 불과 2년동안 있었던 일이다. 나는 대학교 졸업 후 감히 매일에 가까운 시간에 곡을 썼고, 노래를 했고, 피아노를 쳤고, 미디를 했고, 교수법을 공부하고, 작곡을 가르쳤다. 하루하루가 일정이 달랐고 매일매일이 곡마감이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잃었고, 또 스쳤다. 하루에 열 두번도 더 음악과 헤어지고 싶었고 동시에 더 잘 하고 싶었다. 


이제 이 모든 경험과 경력을 가지고 올 해는 대안학교 교사로 활동하게 된다. 교육 전공자도 아니고 교원자격증 소지자도 아닌 내가, 그렇다고 상식이 풍부하고 지식이 박식한 사람도 아닌 내가 말이다. 가르치는 일은 이미 대학 재학 시절부터 해 온 일이라 익숙할테지만, 누군가의 담임선생님이 되어 아이 한 명, 한 명의 한 때를 한 과목으로가 아닌 완전한 하나가 되어 그 삶에 개입함에 의미가 다르다. 


내 삶의 목표와 가치관, 여러가지 상황 가운데 이제 음악 안해도 상관 없다는 각오로 대안교육판에 들어왔다. 그런데 오히려 음악공부를 더 하게 된다. 기계적으로 소리를 만들어내고, 기억에 없을 정도로 음원을 찍어내던 때에는 생각 조차 할 수 없었던 음악의 본질들.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 할 수 있는 음악미학, 음악철학, 음악윤리학, 음악물리학, 음향학 등 숱한 음학을 수업 준비하느라 접하고 있다. 내 분야와는 상관이 없어서 혹은 어려워서 덮어 두었던 그것들, 부끄럽지만 나는 이제서야 '음'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이것들을 알고 작업을 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이제 '배움터길' 친구들과의 활동을 통해 달래고자 한다. 많은 친구들이 균등하게 사고하고 표현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요즘은 2년간 활동한 것이 바탕이 되어 작품도 꾸준히 들어온다. 나는 앞으로 배움터길을 베이스캠프 삼아 활동하면서 학교에 지장이 가지 않는 선에서 커리어를 늘릴 것이고, 반딧불이 아이들을 사랑할 것이고, CTS 아이들의 노래를 들을 것이다. 인정받는 선생님, 동료 교사가 될 것이고, 조금 더 성숙해지면 결혼도 할 것이고, 진정성 있는 대안교육가의 삶에 한 발 한 발 도달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더이상의 대안은 없어도 되는, 그런 사회를 만들고싶다. 


1년 전만 해도 이런 삶의 밑그림을 구축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서 인생은 재미있다. 하나의 길을 정하고 적당한 봉우리를 목표 삼아 산을 올랐는데 오르고 보니 많은 갈래길이 끝없이 펼쳐진 느낌이다. 내려 갈 길도, 올라 갈 길도 많아졌다. 나는 더욱 다양한 방법으로 산행을 즐기게 될 것이다.


2012. 1. 30.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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