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외식하기 좋은 나라다. 한식, 분식, 일식, 중식, 서양식 등 밖에서 내가 먹고자 하는 음식이 있다면 인근 20-30분 내 거리에서 대부분 먹을 수 있다. 다만 밥집은 많아도 맛집을 찾기는 어렵다. 음식업이 상대적으로 소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기에 진입 장벽이 낮은 탓도 있지만 사람들이 어렸을 때부터 쉽게 접하는 것이 음식이다보니 요리도 쉬울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각 음식점별로 맛집들이 있지만 맛집을 찾기 가장 어려운 음식이 바로 백반집이다.
백반집은 대표 메뉴가 없기 때문에 반찬이 정말 맛있어야 한다. 그런데 요리를 좀 해본 사람이라면 각종 찌개나 볶음류의 메인 메뉴보다 반찬을 맛있게 하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안다. 반찬의 맛은 식재료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오랜 요리 경험으로 인한 손맛이 크게 좌지우지되기 때문에 프렌차이즈화되기도 어렵다. 백반접은 겉으로 볼 때는 소박해 보이지만 음식에 대한 내공은 가장 깊은 음식점이다.
오늘 외부 업무를 보다가 점심으로 의왕시 고천동에 위치하고 있는 시골밥상이라는 백반집에 가게 되었다. 같이 업무를 보던 지인이 얼마 전에 이 곳에 왔는데 생선이 끝내주게 맛있었다며 메뉴를 추천했다.
식사시간대가 되면 줄서서 먹는 집이라고 해서 11시쯤 갔더니 다행히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밥을 다 먹을 때쯤인 11시 50분에는 홀은 이미 꽉 차고 밖에서 대기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여유있게 밥을 먹고 싶다면 조금 일찍 가는 것이 좋다.
메뉴가 시골밥상 1개다. 그냥 들어가서 사람 수대로 주문하면 된다. 처음 들어가면 남자와 여자의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는데 나중에 음식이 나온 것을 보니 이해했다. 남자용 밥 그릇의 양이 조금 더 많다. 오랜 경험상 밥 양의 차이를 둔 것이겠지만 밥을 많이 먹고 싶은 여성의 입장으로 보면 좀 서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기본으로 나온 밥양 자체가 적지 않기 때문에 배고플 일은 없을 것 같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보면 모든 사장님들에게 백종원이 똑같이 하는 말이 메뉴를 줄이라는 것이다. 대안학교에서 청소년 친구들과 프로젝트로 매점과 카페를 운영해보면서 이 말의 뜻이 무엇인지 정말 잘 이해하게 되었다. 메뉴가 많으면 재고 관리가 어렵다. 식재료는 장기보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일정 기간이 지나면 버리는 식재료가 많아진다. 하지만 단일 메뉴라면 이 부분이 쉽게 해결이 된다. 장기 보관하지 않기 때문에 식재료는 신선하고 음식은 맛있을 수밖에 없다.
반찬은 갈치구이를 포함하여 총 아홉개와 찌개가 개별적으로 나온다. 반찬은 연근조림, 겉저리, 김, 오이무침, 고사리무침, 삶은 양배추 등 양이 굉장히 풍부하다. 그리고 맛이 정말 끝내준다. 사람들이 줄서서 먹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근처에서 맛있는 백반집을 찾기 어려웠는데 앞으로 이곳을 인생백반집으로 등록해야 할 것 같다. 위의 사진은 3인분을 주문한 양인데 3명이 굉장히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보통 백반집에서는 찌개를 크게 하나 주고 국자로 덜어먹게 주는 곳이 대부분인데 이 곳은 사람마다 하나씩 따로 준다. 그래서 뚝배기 크기에 비해 된장찌개의 양이 적다고 느낄 수 있는데 양은 충분하고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따뜻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다.
반찬은 정말 진심으로 맛있다. 연근조림은 감자조림처럼 부드럽고 달달하며 겉저리는 매콤하고 달달한 맛이 잘 어우러진다. 갈치구이는 적절하게 잘 튀겨져서 발라먹기 좋고 양배추에 사서 쌈장과 함께 먹으면 입 안 가득히 양배추의 달큰함과 갈치구이의 고소함이 가득 퍼진다. 나물류는 간이 적절하게 배어 있어서 다른 반찬과 함께 먹기 좋다.
밥을 다 먹을 때쯤 디저트(?)로 누룽지가 나온다. 같이 간 분들은 배부르다고 하여 내가 거의 다 먹었는데 담백하고 깔끔한 누룽지까지 먹으니 한 상 제대로 대접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음식점 외관으로만 보면 허름하고 큰 특색이 없어서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한 번 먹어보면 계속 생각나는 곳이다. 가게 이름처럼 구수한 어머니 손맛이 느껴지는 든든한 시골 밥상을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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