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1박 2일로 춘천여행을 다녀왔다. 용산에서 itx를 타고 점심으로 닭갈비를 먹고 육림고개, 달아실 미술관, 애니메이션 박물관, 로봇박물관을 찍고 춘천 호반 캠핑장에서 1박을 하는 일정이었는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행이 끝난 후 춘천이 점점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다녀 온 장소마다 여행 후기를 하나씩 올릴 예정인데 오늘은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닭갈비 맛집을 먼저 소개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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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하면 닭갈비가 제일 먼저 떠오르고 춘천을 가면 제일 먼저 닭갈비부터 먹지만 이상하게도 춘천에서 닭갈비를 맛있게 먹었다는 사람들을 본 적이 별로 없고 나 역시 비슷하다. 가끔 춘천을 갈 때 여기저기 검색을 하거나 추천을 받아 맛집이라는 곳을 가보지만 서울에서 먹는 닭갈비와 크게 다르지 않은, 춘천이라니까 뭔가 색다른 맛을 내려고 노력한 닭갈비만 먹어본 것 같다. 항상 2% 아쉬운 닭갈비 맛에 춘천을 가도 굳이 닭갈비를 먹을 필요 없다는 말을 하곤 다녔는데 오늘 소개할 닭갈비집을 다녀오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역시 진짜 맛집은 어느 지역에서나 숨어 있는 법이다.
춘천 숯불 닭갈비는 낙원동 닭갈비 골목 안에 있다. 일부러 사람이 없는 날짜를 택하기는 했지만 최근 코로나 여파 때문인지 거리는 제법 한산했다. 점심 시간보다 좀 이른 시간에 가서 가게에도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11시 반쯤이 되더니 한 두 팀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12시가 다 돼서는 모든 테이블이 꽉 차서 만원이 되었고 일부 기다리는 사람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가게 바로 옆에는 원조숯불닭불고기라는 또 다른 닭갈비집이 있는데 백종원의 3대 천왕과 알쓸신잡에 나와서 유명해진 집이라고 한다. 구글이나 네이버에 '춘천숯불닭갈비집'이란 단어로 검색해도 모두 이 곳만 검색이 된다. 가끔 이 집과 혼동해서 잘못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주인아주머니는 왠지 방송을 보고 왔을 것 같은 외부 손님 같은 느낌이 들면 방송 보고 왔으면 여기가 아닌 옆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신다.
음식을 먹기 전부터 주인 아주머니와 외부 간판 소개글을 보며 맛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가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동네 사람들만 아는 맛집이라는 어느 블로거의 글을 보고 가게 되었는데 가끔 나 같은 외부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동네 사람들이 전부였다.
제일 인상 깊은 점은 닭갈비 가격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맛보다 가격 때문에 가게 되었다. 닭갈비 1인분에 8,900원이라는 착한 가격 때문에, 맛은 다 거기가 거기일 텐데 이왕이면 가격이 저렴한데서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닭갈비를 다 먹고 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 곳은 앞으로 춘천에 올 때마다 들를 예정이다. 인생 닭갈비를 찾았다.
홀은 여느 가게처럼 평범하다. 입식과 좌식이 절반 정도씩 섞여 있어서 취향대로 앉을 수 있다. 인원수대로 주문하면 1인분에 8,900원이지만 그게 아니면 11,000원이라는 것이 재밌다. 주인 아주머니의 인심이 박한 곳이 아니기 때문에 3명이 2인분을 시키면 아마도 양을 2인분보다 조금 더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건 약간의 팁인데 주문할 때 00맛, 00 맛이라고 하면 주인아주머니가 외부 사람이란 것을 딱 알아채신다. 그냥 인분만 이야기해야 동네 사람에게 주시듯이 주신다. 외부 사람들은 남기는 음식들이 많아서 그런지 똑같은 반찬도 양을 좀 다르게 주시는 것 같았다. 물론 남의 밥상을 계속 지켜보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이것은 다 먹고 나간 사람들의 빈 그릇들을 보고 느낀 순전히 내 감이다.
반찬의 종류만 놓고 보면 조촐하지만 맛집답게 역시 반찬 맛부터 포스가 달랐다. 백김치와 깻잎 절임, 상추, 고추, 마늘, 열무김치, 쌈장이 나온다. 이 중에서 백김치는 입에 넣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담백하고 아삭한 식감이 너무 맛있었다. 맛있다고 주인아주머니에게 엄지 척을 해 드리니 약초물에 일일이 재워둔 거라서 맛이 좋을 것이라고 하셨다. 깻잎 절임도 백김치와 식감은 달랐지만 같은 방법으로 절이신 것인지 담백하면서도 적당한 단 맛이 도는 것이 균형감이 매우 좋았다. 쌈장도 시판 직접 담그신 장을 이용하셔서 손맛이 살아 있는 장맛을 느낄 수 있었다.
닭갈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철판닭갈비와 숯불닭갈비의 형태가 아니라 숯불돼지갈비의 모습과 닮았다. 굽는 방식도 동일해서 고기의 종류만 다르지 마치 돼지갈비를 먹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불판이 타지 않게 잘 구워주면 어느새 노릇노릇한 닭갈비가 완성이 된다. 어느 정도 구워지면 주인아주머니가 오셔서 먹기 좋은 크기도 닭갈비를 잘라주시고 어떻게 먹으면 좋은지 팁들도 알려주신다.
백김치 위에 노릇노릇 구워진 달갈비를 하나 올려놓고 마늘과 쌈장을 얹어서 먹으면 정말 맛있다. 백김치 대신 깻잎절임으로 싸서 먹어도 역시 맛이 좋다. 닭갈비를 그냥 먹어도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과 적당히 매콤하면서도 담백한 맛의 조화가 예술이다. 고기 자체가 매우 촉촉하고 씹는 맛이 좋은데 아마도 닭고기를 손질하고 숙성하는 가게만의 노하우가 따로 있는 것 같다.
한 솥 가득히 나온 우거지 된장국인데 이건 큼직한 뚝배기 그릇에 무료로 주신다. 매우 맛있어서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었는데 옆 테이블의 이십 대 초반의 젊은 커플은 이것보다 작은 크기에 나온 된장국도 거의 먹지 않고 그냥 나가버렸다.
대부분의 음식을 남긴 모습을 보고 그 커플이 처음 들어올 때 주인 아주머니가 방송을 보고 왔으면 옆집으로 가라고 안내하는 모습이 이해가 갔다. 후기를 찾아보면 옆집과 이 집 닭갈비의 맛과 굽는 방식의 차이는 상당히 다르다. 옆집의 경우 좀 더 달달한 양념에 숯불에 직접 직화하는 방식으로 조리를 한다면 이 곳은 일반적인 돼지갈비 방식으로 굽고 간도 달달한 맛보다는 담백한 맛에 가깝기 때문에 '맵단짠'의 맛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는 어딘가 맛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재료 자체의 맛을 잘 살리면서 슴슴하고 담백하게 간을 하는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라 이곳 닭갈비가 입맛에 딱 맞았다. 그렇다고 맛이 싱거운 편은 아니다. 닭갈비 요리 자체의 기본양념은 충분히 배어들어가 있어서 누구나 와도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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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가까운 것도 아닌데 1년에 한 번 정도는 꼭 춘천에 다녀오는 것 같다. 작년에 아이들과 손흥민 관련 프로젝트 학습으로 춘천에 한 번 다녀오고 난 후 춘천이 좀 더 좋아졌고 이번 여행으로 춘천이 점점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멀지 않으니 앞으로 춘천으로 여행을 계속 다닐 예정 인데 최근에 집 관련 예능에서 나오는 춘천의 예쁜 집들을 보면서 춘천으로 이사를 갈까도 슬쩍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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