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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학교/수업과교실

16년 만에 무지개학교에서 다시 강의를 하다 feat. 놀이터 수업 '놀면 뮈하니'

by 식인사과 2020.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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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안학교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시기는 2004년이다. 고등학교 풍물패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과천 지역에서 문화 활동 단체를 운영하고 계시는 선생님 한 분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이 지역에서 진행하시는 모든 행사에 따라다니며 스탭 일도 하고 풍물 공연도 하곤 했다. 나를 아들처럼 아끼고 예뻐해 주셔서 나도 마음속에 대부로 생각하고 항상 선생님이 하시는 일을 함께 했다. 

 

지금 내가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모두 선생님에게 배운 것이다. 나이가 어린 나에게 항상 수평적인 관계에서 말을 걸어주시고 하대하는 법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90년대 후반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21세기 마인드로 청소년, 청년들과 평등하게 대화를 하신 선생님이 참 멋지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과천에서의 활동을 접으시고 귀농을 하시고 농사를 짓고 계신다. 올해 안에 꼭 찾아뵈어야겠다.

 

대학교 2학년까지 마치고 나니 군대를 가야할 시기가 되어 휴학을 했다. 7월 입대라 남는 시간에 동네에 있는 문화의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선생님께서 대안학교에서 풍물을 가르쳐보라고 제안해주셨다. '대안학교'의 개념도 잘 모르던 때였는데 그냥 선생님 하시는 일이니까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하기로 했다. 그렇게 2004년에 처음 무지개학교와 인연을 맺었다.

 

오마이뉴스 2005. 안양지역 '중등대안학교' 설립 추진한다

16년 전이지만 아직도 무지개학교에서 첫 수업 경험은 기억에 많이 남는다. 지금이야 멋진 건물을 가지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문원동의 한 주택에서 소박하게 운영하고 있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이들의 목소리가 떠들썩하게 들렸고 아이들과 나는 수업 시작 전까지 수다를 실컷 떨다가 수업에 들어갔다.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말을 놓고 대화했던 그 경험 덕분에 관계 맺기에 대한 나의 디폴트 값이 변할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꼰대 기질이 스멀스멀 올라오려고 할 때면 난 언제나 이 시절의 아이들과 대화를 하던 모습을 떠올린다.


무지개학교가 인연이 되어 대학교 졸업 후 인근의 중등대안학교에서 11년간 근무를 했고 올해 초 퇴사했다. 그리고 얼마 전 다시 무지개학교에 가서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당분간 대안학교와 관련된 일은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창업을 준비하면서 가볍게 할 수 있는 부업이 필요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나에게 대안교육에 대한 첫 경험을 선물한 무지개학교에서 다시 수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지개학교는 2003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 이후 2011년에 중등 과정을 새롭게 시작했고 지금은 무지개교육마을, 초등무지개, 중등무지개가 함께 식구 단체로 운영되고 있다. 언어가 조금씩 다르지만 공동의 성장과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설립 취지와 단체 철학은 거의 비슷하다. 아래 사이트에 가면 마을과 학교의 교육 철학과 운영과정을 자세하 알 수 있다. 

 

무지개학교는 서로 다른 나와 너를 사랑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지혜를 배웁니다.
지금 여기에서 배움을 즐겁게 누리며, 경쟁에서 이기려고 배우지 않습니다.
개별 가정과 학교는 아이의 삶터이자 배움터로 함께 나누며 성장합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생활 속에서 실천합니다.
교실만이 아니라 학교를 둘러싼 마을과 세상에서 함께 배우고 나눕니다.

중등무지개학교 학교 철학
 

초중등대안학교 무지개교육마을

경기도 과천에 위치한 초중등대안학교 무지개교육마을 입니다. 서로 어울려 마을을 이루며 살아가듯 아이를 함께 키우기 위해 초등무지개학교, 중등무지개학교에는 무지개교육마을이 있습니��

www.moojigae.or.kr

 

 

그동안 대안학교에 일하면서 아이들의 학교탐방을 계기로 꽤 많은 학교를 방문했다. 학교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다르지만 아이들과 교사, 부모가 함께 만들고 꾸민 학교 공간의 느낌은 대부분 비슷한 것 같다. 직접 만든 물건들이 많다 보니 때로는 거칠고 투박해 보이지만 그런 손 때 묻은 도구들과 가구들 덕분에 공간은 따뜻한 느낌을 준다.

 

 

무지개학교는 아지트 같은 공간이 많다. 몇 년 전 처음 학교를 방문했을 때는 조금 차가운 느낌이 있었는데 얼마 전 리모델링을 해서 분위기가 많이 변했다. 채도가 높은 색으로 벽을 칠하고 계단과 가구들을 나무 재질로 변경하면서 어린 아이들의 밝고 따뜻한 느낌을 공간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2주 전부터 중등과정의 친구들과 놀이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놀이터의 개념과 역사를 공부하고 과천의 놀이터를 돌아다니면서 놀이터 지도를 만들고 학기말 과제로 내가 꿈꾼는 놀이터를 미니어처로 만들어보는 수업이다.

 

5년 전에 놀이터를 주제로 처음 수업을 열면서 놀이터 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대한민국의 똑같이 생긴 놀이터 공간에 대한 문제의식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마침 이번에 수업 제안을 받을 때 외부 활동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동안 쌓아놓은 자료를 바탕으로 놀이터 수업을 기획하게 되었다. 

 

 

한 친구가 칠판에 내 얼굴을 그려주었다. 그 동안 이렇게 생긴 그림이 여러 개 있는데 모두 내 SNS 계정에서 프로필로 쓰고 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그림들은 그림체는 투박하지만 왠지 정감이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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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만에 다시 수업을 하게 된 느낌은 조금 묘하다. 16년 전의 나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많이 다르겠지만 수업을 할 때마다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내 모습은 계속 변하더라도 아이들과 처음 수업을 했을 때의 설레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과 만나면 이런 게 좋다. 나를 돌아보게 하고 나의 처음을 기억하게 한다. 그래서 특별하게 노력하지 않아도 나의 정신을 말랑말랑하게 유지하며 살 수 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더라도 아이들과 만나는 일은 꾸준히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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