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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학교/수업과교실

배움터길 교육토론회 : 이불 밖은 위험해, 이 불안은 더 위험해

by 식인사과 2018.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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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한 대안학교에서는 매년 학생, 교사, 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교육토론회를 진행한다. 학교 교육과정에 대해 그 해 화두가 되는 주제를 가지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자리로서 올해의 화두는 '불안'이었다. '불안'이라는 화두는 내가 대안학교에서 처음으로 교사로 일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나오는 주제다. 불안의 방향, 내용, 대상이 달라졌을 뿐 '학교'라는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많은 사람들은 미래의 삶에 대해 불안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배우지 않았다면,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면 오히려 좀 덜 불안해할까. 


무언가를 계속 배우면서도 막연한 진로에 불안해하는 우리의 생각을 돌아보면 좋겠다는 생각과 나름 10년차 대안교육의 경험으로 바탕으로 발제를 했다.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정신없이 바쁜 생활을 하다보니 발제했던 순간을 잊고 살았는데 얼마 전 행사 기획서를 쓰기 위해서 자료를 검색하다가 그 당시 음슴체로 작성한 발제문을 발견했다. 여전히 부실한 내용이지만 내 스스로 돌아보고 싶은 내용이 있어, 그리고 어느 누군가와 이런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어 블로그용으로 문장만 수정해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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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네이버 지식인 활동을 통해 대안교육 또는 청소년 진로에 대해 상담을 해주고 있습니다 (웃음) 네이버 지식인에는 대안학교에 대한 질문이 꽤 많이 올라옵니다. 그런데 많은 질문과 답변 속에서 대안학교는 '인성'을 가르치는 학교라는 오해가 많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성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대안학교는 애초에 인성을 가르치려고 만든 학교도 아니고 인성은 단기간에 만들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좋은 인성은 가르쳐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고는 계몽주의적 사고로 상당히 시대착오적인 발상인데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도 도덕, 인성, 성품 등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기술적으로 ‘만들어’ 질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동의한다는 전제 하에 '진로' 역시 비슷한 오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움터길 교육영역을 보면 진로 영역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고 배움터길 길라잡이, 자아탐색, 대안학교탐방, 직업탐구, 포트폴리오, 길찾기, 노동교육, 단기 및 장기인턴십, 진로토크, 배움의 자서전 등 학년별, 단계별로 진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로’는 학교 수업을 넘어서 전생애 주기적으로 바라봐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쉬운 예로 저는 교사로 일하면서도 아직도 진로를 찾고 있습니다 (웃음) 아마도 죽을 때까지 제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그만큼의 삶의 무게를 견디며 내 길을 찾아갈 것입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진로와 꿈은 인성과 비슷하게 단기간에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술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진로는 단기간에, 속성으로, 기술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을요. 그런데 왜 우리는 학교 교육에서 학생 개인의 진로의 방향과 내용에 대해 일정 부분 확정하고 졸업할 때쯤 완성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을가요? 성찰의 언어로서 ‘흔들리면서 피는 꽃’이라는 도종환 시인의 시에 깊은 감명을 받으면서도 우리는 왜 흔들려야 할 시기에 흔들리는 학생들의 모습에 불안해하고 더 이상 흔들리지 못하게 하고 싶은 욕구로 내 자신이 흔들리고 있을까요.


나는 우리 애가 졸업할 때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명확하게 알았으면 좋겠어요.


오래 전 한 부모님과 상담을 하면서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아마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모두 비슷한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배움터길 학생들은 5년 동안 14개의 정기적인 진로 수업, 5번의 진로주간, 3주간의 진로여행을 통해 자기의 진로에 대해서 심도 있게 고민하는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고민의 방향과 성장의 속도에 따라 길(진로)이 만들어지는 시간과 길의 모양새, 크기가 다를 수 있겠지만 학생들 스스로 만들어가고 찾아가는 길이라는 면에서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에 언급한 해당 교육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내용은 학년모임, 교육과정 간담회, 개별면담 등을 통해 공유하고 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먼 부분도 있지만 12년의 역사 속에 진로 교육의 방향과 내용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안정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직도 불안할까요.


네이버 지식인을 통해 진로 상담을 하다보면 20세 이상의 청년들의 이야기도 꽤 많이 올라옵니다.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잘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장문의 질문이 올라옵니다. 그런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의 방향은 대부분 동일합니다. 


그 시기에 필요한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진로 고민이며 다만 대한민국 사회는 너무 이른 나이에 진로를 정하라고 강요하는 사회이기에 질문자님이 좌절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니까 힘내라고. 별것 아닌 이런 말들에 생각보다 많은 청년들이 위로를 받는 것을 보며 우리 사회는 이런 당연한 말들을 잘 해주지 않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 초등학교 6학년 실과 6단원 1번 항목 나의 진로 안에 있는 '진로 탐색과 진로 설계'의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1번 나의 특성을 탐색해봅시다, 2번 나는 무엇을 잘하는지 알아봅시다.” 


탐색의 과정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정답 없는 질문의 끊임없이 던져보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나에 대한 평가 지표를 조금씩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건강한 진로 탐색의 과정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로 눈을 돌려보면 어떨까요? 한창 나를 찾아가야 하는 진로 탐색의 시간에 진로 선택을 강요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정서적 차이는 있겠지만 공교육과 대안교육은 이 부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십대와 이십대는 진로 탐색의 기간이지 진로 선택의 시기가 아닙니다. 아직 사회적 경험이 충분하지 않은 청소년 친구들에게 앞으로 남은 인생의 대부분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진로 또는 인생의 방향을 정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이제 막 세상과 접점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억압과 폭력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좋은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많이 먹어봐야 하고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영화를 많이 봐야 합니다. 모든 분야가 비슷합니다. 좋은 진로 교육이란 우선 겪어보고 시도해보면서 작은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진로에 이어 졸업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함께 논의가 필요합니다. 졸업은 무술을 배우는 수련생이 기초 수련을 마치고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하산하는 과정이지 무술의 완성 단계가 아닙니다. 게임으로 비유하면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하는 단계이지 만랩을 달성하는 시기도 아닙니다. 졸업은 학교에서 갈고 닦은 기본 아이템을 장착하고 '세상'이라는 리얼 맵으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기존 사회의 어른들은 이들이 힘들어 할 때 적극적으로 회복마법을 걸어주는 마법사가 되어주거나 잠시 쉬면서 의지하고 싶을 때 옆에서 어깨를 대어주는 동료가 되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데 자기 삶의 경험에 따라 자기만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저 역시도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의 폭은 제 삶의 폭을 넘어갈 수 없습니다. 진로 역시 학교, 직장 등의 조직 생활을 통해 경험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진로를 바라볼 때 직업, 돈, 진학, 수업 등의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것은 우리가 배운 교육과 경험의 한계일 수도 있습니다.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을 시작으로 한국에도 시작된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물결은 단순히 기계적인 기술 진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4차 산업 혁명은 조직 운영의 분권화, 자율성, 네트워크를 근간으로 하는 근본적인 생활환경, 일하는 방식 등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다가오는 이런 사회적 환경 속에서 이제는 진로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조금 달라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학생, 교사 ,부모 모두 건강하게 꿈꾸며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낯설게 보기'라는 기술을 통해 세상의 이면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의 확장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학생, 교사, 부모가 진로에 대해 공개적으로 함께 이야기하는 소통의 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은 환영합니다. 하지만 진로에 대한 소통 창구는 지속적으로 만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참여 저조 또는 소통 부재로 제대로 성사되지 못한 역사적 맥락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2016년 한 선생님이 1년 주기로 진로토론회 기획을 했습니다. 진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모두 다르기에 오픈된 관점으로 모두의 의견을 들어보고 주제도 함께 정하면서 진행하려고 했지만 3회 째 아무도 참석하지 않아서 무산된 경험이 있습니다. 


소통은 제안과 함께 구체적 실천으로 이어졌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소통의 과정에서 스스로 대상화하거나 누군가에 의해 소통이 가능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버리고 우리 모두 소통의 주체가 되어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수업을 준비하면서 참고했던 책에 나와 있는 글을 읽으며 발제를 마치겠습니다.


새로운 사실의 발견, 전진과 도약, 무지의 정복은 이성이 아니라 상상력과 직관이 하는 일이다.

생각의 탄생 中 


오늘 토론회가 이성적 잣대로 서로를 평가하는 자리가 아닌, 새로운 상상력으로 즐겁고 유쾌한 시도를 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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