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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학교/온라인강의

[TED] 켄 로빈슨: 학교가 창의력을 죽인다

by 식인사과 2013.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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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보려면 사진 속 얼굴을 꾹 눌러주세요!)

 

 

내가 몸 담고 있는 대안학교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대안학교들은 공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여기서 말하는 공교육의 한계는 '입시 교육으로 인한 전인교육의 부재'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기초 학문이란 무엇인지, 청소년 시기에 배워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면 사실 대안교육도 켄 로빈슨이 말하는 것처럼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한계란 '학문의 계층'을 나누는 것이다. 이 부분은 공교육이나 대안교육이나 사실 큰 차이가 없다.

 

언젠가 한 학부모 모임에 갔다가 기초 학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그래도 영어와 수학은 체계적으로 배워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도 그것이 학문의 기초이지 않겠느냐 라는 질문이 나온 적 있다. 이런 질문은 매년 나오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지만 들을 때마다 힘이 빠지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그 질문에 대해 학문의 기초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밝히며 이런 질문을 했던 것 같다. "표현 영역 수업 중에 만화, 저글링 수업들을 기초 학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모두들 움찔, 뭔가 어색한 분위기,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라고 할 수도 없는 애매한 분위기- 그 날의 정서를 요약하며 대충 이랬다.

 

학문의 계층을 나누는 것은 대한민국 지성의 고질적인 문제다. 그런데 위 강연을 들으면서 꽤 많은 나라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러니 한 것은 특정한 한 분야에서도 계층이 나뉜다는 것이다. 가령 예술 영역에서 연극, 미술, 음악, 무용 등은 기초 학문이고 만화, 게임, 저글링 등은 취미라고 생각하는 암묵적인 인식이 우리 사회에는 꽤 널리 퍼져있다. 아마도 위의 질문에서 만화, 저글링 대신 연극이나 음악을 예로 들었다면 반응은 굉장히 달랐을 것이다.

 

며칠 전에는 몇몇 아버님들과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버님들은 노동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얘기하면서 요즘 애들은 몸으로 하는 노동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아쉬워하셨다. 머리로 하는 노동이든 몸으로 하든 노동이든 똑같은 노동임에는 틀림 없지만 머리로 하는 노동이 더 인정받게 된데에는 사실 청소년 시기에 이미 학문의 계층이 뚜렷이 나눠져 있기 때문이다. 춤을 배우겠어요- 라는 말에는 갸우뚱 하는 어른들이 앉아서 책을 읽으며 몰두하는 모습에는 만세!를 외치는 환경에서 자란 친구들이 몸으로 하는 노동에 부정적인 것은 당연하다.

 

본질적으로 '공부'에 대한 우리의 협소한 인식은 좀 깨트릴 필요가 있다. 몇 시간 동안 앉아서 책을 읽으며 문제를 푸는 것만이 '공부'라고 생각하고 몇 시간 동안 일어나서 춤을 배우며 기술을 익히는 것은 '취미'라는 인식이 변하지 않는 한 우리의 지성은 영원히 제자리 걸음을 할 것이다.

 

한 자리에 앉아서 몇 시간이고 텍스트를 들여다보며 연구하고 그것을 즐길 수있는 것은 특별한 재능이다. 한 자리에서 못과 톱과 망치로 몇 시간이고 작업을 하면서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도 특별한 재능이다. 한 자리에서 몇 시간 동안 춤을 추면서 힘들어도 다시 한 번을 외칠 수 있는 것도 특별한 재능이다. 한 자리에서 몇 시간 동안 백지를 들여다보며 쉬지 않고 붓을 놀리는 것도 역시 특별한 재능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천재가 여러가지인데 우리는 그 중 한 가지- 즉 앉아서 텍스트를 읽고 연구하는 것이 그 중의 으뜸 또는 학문의 기초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지식의 저주가 시작된다. 구분짓기를 통한 지식의 전수는 사회를 피폐하게 만들 뿐이다.

 

지식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공부'의 형태는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가지가 될 수 있다는 조금은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그런 사고가 사회 전반적으로 펼쳐질 때 동네 수퍼 아저씨와 강남 성형외과 의사가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독립 예술가들도 본인의 작품을 제대로 봐주는 관객들이 늘어나면서 본인의 삶을 보다 존귀하게 영위할 수 있다. 정부가 게임을 셧다운 시킬 때 그런 정부를 셧다운 시킬 수 있는 시민들의 힘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사회가 가능해질 때 우리는 보다 행복해 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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