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연필통은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와 교육연극연구소 프락시스가 서로 인연을 맺고 연극을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노숙인 극단이다. 프락시스에 아는 분들이 몇몇 있어 이번에 연극 수업을 듣는 친구들과 함께 공연을 보게 되었는데, 처음 아이들에게 이 연극이 같이 보자고 제안했을 때 사실 조금 걱정을 했다. 노숙을 하는 분들의 이야기가 이 친구들에게 어떻게 다가설지 짐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낯선 이야기 속에 지루해하면 어떨까 걱정을 했는데 웬 걸- 처음에는 조금 지루해하는 눈치더니 극이 진행될 수록 점점 몰입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 역시 극 초반에는 집중이 잘 되지 않았는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 연극을 보면서 투박하지만 날 것의 감동이 내 심장을 툭툭 치기 시작했다. 연극은 환상일까, 현실일까- 몇 년 전부터 나에게 화두가 된 이 질문에 이 연극은 한 마디 툭 던진다. "둘 다야"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히 젖으면서 이들의 이야기에 푹 빠졌다가 극장을 나섰다. 극장을 나서자 노숙과는 전혀 다른 대학로의 질펀한 유흥 현장이 내 앞을 가로 막는다. 연극은 환상일까, 현실일까- 내 질문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이 연극 날 것의 감동이 있다. 전문 배우가 나오는 일반 상업 연극과는 결이 다르다. 어떤 연극적 테크닉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진짜' 연극을 보고 싶은 분들에게는 강력히 추천하다. 돈을 버는 연극이 아니더라도 이런 연극이 대학로 한 구석에라도 지속적으로 올라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대학로에 아이들과 함께 공연을 보러갈 때마다 들르는 와플 가게. 오늘은 인원이 제법 많아서 돈도 많이 깨졌지만 연극을 같이 보고 즐겁게 있는 모습이 그저 이쁘다. 이 연극이 어디까지 사실이고 현실인지 궁금한 표정으로 질문을 하는 모습을 보며 같이 공연을 본 한 형님이 '아이들이 토양이 다른 것 같다'라는 표현을 했다. 확실히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나눔에 대한 수업을 해서 그런지 일반인이라면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 낯선 소재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몰입해서 보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
연극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연극을 전공하면서 시작된 질문이었고 한창 연극 공부를 할 때만 해도 이 질문에 다소 회의적이었는데 아이들과 연극으로 만나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연극을 보면서 그 다른 생각에 조금 더 확신이 생긴 것 같다. 연극은 재밌다!
'미지의관객 > 잃어버린연극'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면가왕 부뚜막고양이 노래 들으려다가 결국 음악대장 정주행한 이야기 (4) | 2020.10.25 |
---|---|
BTS도 반한 이제는 월드 클래스 스트릿 댄서, 올레디 (ALL READY) (2) | 2020.10.03 |
[민들레] 생활의 달인, 그들이 예술가다. (0) | 2013.10.21 |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한 짧은 단상 (0) | 2013.09.10 |
배우훈련 | 배우에 대한 기록 (0) | 2013.07.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