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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자전거도둑

죽은 교육, 낯설게 보기

by 식인사과 2015.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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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좋은 교육이란 학생들이 각자의 상황에 알맞게 잘 짜여진 교육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죽을 때까지 누군가에 의해 짜여진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누군가에게는 그 방법이 좋은 교육이 될 수도 있겠지만 다양한 변수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죽은 교육이 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들 중 대부분은 죽은 교육을 받고 자라났다. 아이러니한 것은 죽은 교육의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학? 살면서 더하기빼기 말고 더 필요한 게 있냐? 미분적분을 도대체 왜 배워야 하냐구!"라며 분노하면서 정작 제 자식에게는 미분적분을 꼭 잘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한다는 것이다. 죽은 교육은 죽은 지식을 낳는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곳이 아니다. 다만 신선한 재료를 제공할 뿐이다. 어떻게 만들어야 맛있는지 아이들은 때로는 치고박고 싸우면서 때로는 협력하면서 배운다. 어떤 녀석은 날 것의 생생함을 좋아하지만 어떤 녀석들은 간이 푹 배인 숙성함을 좋아한다. 서로의 음식을 골고루 나눠먹기도 하지만 어떤 녀석들은 자기만의 음식의 세계를 찾아서 다른 곳으로 떠나기도 한다. 그것 또한 그 친구의 삶의 과정이고 결과이다.

 

아이들의 성장과정은 마치 샐러드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비슷하다. 샐러드는 서로 잘 어우러지면서도 각기 제 맛을 잃지 않는다. 이 때 어른이 작용할 곳은 음식이 아니라 그릇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어우러짐은 과정이 결코 아름답지 않다. 어우러지는 과정은 매우 격렬하며 각 과정마다 격렬함의 정도도 다르다. 이 때 그릇이 불안정해서 중간에 깨져버리면 샐러드는 바닥에 쏟아져 먹을 수가 없다. 만약 어른들이 볼 때 그 과정이 아름답게 보이거나 샐러드 맛이 자기 입맛에 맞는다면 그건 어느 과정에서 달달한 조미료가 많이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

 

이 시대의 어른들이 아이들을 또는 청춘들을 바라보는 기준은 상당히 높다. 부모님들과 면담을 하다보면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제 아이가 졸업할 때쯤 자신의 생각으로 분명하게 진로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다른 것은 상관 없으니 졸업을 하고 나면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분명하게 정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하지만 잠시 우리의 청소년 시기를 떠올려보자. 스무살에 제 삶의 방향을 분명하게 정한 사람이 과연 몇사람이나 될까. 차라리 수능이 쉽다.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은게 분명한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진로는 생물 같아서 평생 진화한다. 어느 순간 딱 완성되는게 아니다. 완성형의 경우는 하나밖에 없다. 화석이나 박제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본인의 경험과 지식을 거꾸로 의심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의 행복관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아이도 부모도 교사도 서로 행복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가의 시선-낯설게 보기-을 가져야 한다. 예술가처럼 세상을 낯설게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우리가 매일 보던 사물을, 나의 삶을, 사회의 시스템을 낯설게 봐야한다. 특히 제 아이의 성장을 고민한다면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을, 그 시스템을 공고하게 유지하는 보이지 않는 시스템까지 낯설게 봐야 한다. 우리가 배운 죽은 교육을 낯설게 보기 시작할 때 세상은 조금씩 변할 수 있고 그래야 제 아이도 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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