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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연말 발표회 일정이 모두 끝나고 크리스마스 이브를 명분으로 마님과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했다. 처음에는 익선동 거리를 걸으려고 했는데 때마침 비가 오는 바람에 코스를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회 관람으로 변경했다. 마침 마님이 좋아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시 특별 전시회가 열려서 기쁜 마음으로 보러 갔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그림들이 아니기 때문에 긴 평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그림은 기억이 나지 않고 큐레이팅만 기억이 나는 걸 보면 주객이 전도된 전시회가 아닌가 싶다. 오히려 그림이 그려졌던 시기를 고려해 밝은 분위기의 자연광 컨셉으로 큐레이팅을 했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너무 어두워서 그림부터 설명까지 잘 보이지 않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 같다.
아무튼 전시회 관람이 끝나고 맛집을 찾기 위해 검색을 해보니 나름 유명한 동부 이촌동 거리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지인에게 맛집을 추천해달라고 하니 동강이라는 중국집에서 유린기를 꼭 먹어보라고 했다. 가격이 꽤 비싼 편이었지만 비싼 동네에서 비싸게 한 번 먹어보자는 생각으로 바로 동강으로 향했다. 하지만 저녁 시간 전 5시까지는 브레이크 타임이라고 해서 바로 옆집 카페에서 1시간 가량 기다렸다가 들어갔다. 가게는 5시 오픈한지 정확히 15분 만에 만석이 되었다.
이 집에서 가장 유명한 유린기와 함께 사천탕면, 이과두주를 주문했다. 먼저 나온 간단한 밑반찬으로 이과두주 한잔 하면서 마님과 함께 일 년을 열심히 살아낸 것에 대해 자축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든 일정이 끝나서 그런지 오늘 따라 이과두주가 더 맛있게 느껴졌다.
이과두주 한 병이 거의 비워갈 무렵 유린기가 나왔다. 사천탕면은 나중에 주시려고 했다가 우리가 요청하니 바로 내주셨는데 그릇 두개에 나눠 주셔서 먹기가 편했다. 사천탕면은 일반 중국집 우동의 아주 담백한 버전으로 생각하면 된다. 싱싱한 해물맛이 살아있는 담백한 국물과 탱탱한 면발의 식감이 아주 잘 어울렸다.
유린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극찬한대로 아주 맛있었다. 다만 두툼한 찹쌀옷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분명히 갈릴 것 같다. 찹쌀옷이 너무 두껍다 보니 쫄깃쫄깃한 식감이 살아 있어서 씹는 맛은 좋은데 다르게 생각하면 고기 요리가 아니라 찹쌀떡 요리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닭고기는 얇고 찹쌀옷은 두껍다.
호불호야 어찌 됐든 나름 대식가인 우리는 유린기와 사천탕면을 추가로 주문한 소주 한병과 함께 깔끔하게 해치웠다. 메뉴에 보면 유린기 사이즈가 하나 밖에 없는데 그것은 '중' 사이즈이고 원하면 '소' 사이즈로 주문할 수도 있다. 블로그 평을 보면 양이 적다고 하는 분들이 많아서 그냥 '중'사이즈로 주문했는데 식사와 함께 먹기에는 양이 조금 많을 수 있다. 많이 배고픈 상태가 아니면 둘이 가서 유린기 '소'와 면요리 하나 주문하면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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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고 계산을 해보니 유린기 33,000원, 사천탕면 10,000원, 이과두주 5,000원, 소주 5,000원 이렇게 해서 총 53,000원이 나왔다. 맛은 좋지만 억소리 나는 집값으로 유명한 동네 컨셉답게 가성비는 참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미료 맛이 강한 동네 중국집 음식과 맛의 차이가 분명히 나지만 이 정도 가격 차이를 느낄 정도인가 생각해보면 확실히 가격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끼 식사에 4~5만원 정도는 부담없이 낼 수 있는 분들이나 가격을 떠나 맛집 탐방을 즐기는 분들에게는 추천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발품을 들여 찾아갈 만한 집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래도 맛은 인정! 이촌동 인근에 들를 일이 있다면 유린기 한 점 먹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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