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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른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빠르기만 한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빠르면 무조건 좋다고 하는 것도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 빠른 것에만 익숙해지는 것은 호불호를 떠나서 나쁘다고 생각한다. 어떤 현상에서 한 가지 속성에만 길들여지는 것은 행복한 삶의 전제 조건 중의 하나인 다양성을 유지하는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때로는 느리게 접해야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있다. 반대로 빠르게 접해야 사물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사물이든, 현상이든, 상황이든 느린 것은 느리게, 빠른 것은 빠르게 접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스마트폰은 모든 정보 습득 과정을 빠르게 만들었다. 정보와 관계의 연결고리를 촘촘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스마트폰은 큰 역할을 했고 그만큼 유용한 점도 많지만 느리게 접해야 좋을 정보들까지 빠르게 접하게 만들면서 인식을 왜곡시키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는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이성과 감성과 몸을 쉬게 하는 것이 좋다.
학교에서 일하다보니 스마트폰은 항상 화제의 중심이 된다.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강제 규칙이 없고 자율성으로 운영을 하다보니 부모님들이 걱정을 많이 하시지만, 학생들은 생각만큼 스마트폰을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는다.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 패턴과 일상과의 연결고리를 잘 이해한다면 학교 생활을 유지하는데 과도하게 제재하는 경우도 별로 없다.
하지만 학교 프로그램 중 일상의 연결고리를 끊고 느리게 가야 좋은 경우에도 학생들은 스마트폰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어쩔 수 없이 강제로 걷는 경우도 있고 프로그램의 특성상 일부 허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강제로 걷는 것도, 일부 허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 교사가 스마트폰을 강제로 걷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기분 좋은 마음으로 스마트폰을 자발적으로 쓰지 않게 만들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일본에서 스마트폰 이불이 판매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작은 사이즈의 폰을 선호하는 일본인들의 특성 때문에 일본에서 판매되는 스마트폰 이불은 사이즈가 작다. 그래서 학교에 남아 있는 짜투리 천으로 다양한 크기의 스마트폰 이불을 만들었는데, 제작은 바느질로 옷도 만들어 입으시는 동료쌤에게 부탁했다. 짜투리 천으로 만드니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유니크한 제품(?)이 만들어졌다. 만들어놓고 보니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처음 접하게 하는 부모들을 대상으로 업싸이클링 제품을 만들어 판매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기회에 창업을....)
이런 아이템을 활용한다고 모든 학생들이 기분 좋게 스마트폰을 자발적으로 내지는 않는다. 아이템은 아이템일 뿐 자발성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결국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다. 올해 길찾기 여행 때 사용해보려고 제작을 했지만 시범적으로 책여행 때 이 아이템을 적용했다. 절반의 성공이지만 의미는 있었다.
사람에게 잠이 필요한 것처럼 스마트폰도 잠이 필요하다. 서로의 쉼표를 허용할 때 사람도, 스마트폰도 서로에게 유의미한 작용을 할 수 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스마트폰에게도 잠을 허락하자. 크게 불편할 것 같고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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