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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평소에 주소록, 일정, 문서 등의 정보와 사진은 대부분 클라우드에 백업을 하는 편이고 핸드폰도 작은 폰을 선호해서 작년 초에 아이폰SE 버전을 중고로 구매한 것이기 때문에 큰 타격은 받지 않았다. 기존에 쓰던 아이폰은 일본판 언락 버전이었는데 아이폰4S에 쓰던 유심을 그대로 옮겨서 KT 순i밸류 요금제를 사용하고 있었다. 우선 급한대로 집에 있는 3G 유심과 수집해 놓은 스마트폰 중 제법 빠릿빠릿한 넥서스5를 들고 근처 대리점에 갔다.
대리점 직원은 보자마자 대리점이 아닌 지점에 가서 LTE 유심 사서 3G로 교환해야 한다고 얘기했지만 한 번 해보고 얘기하자고 했더니 3G 유심을 내 것으로 변경해 주었고 몇 번 재부팅 끝에 바로 개통이 되었다. 사실 대리점 직원은 그 자리에서 유심 넣고 켜본 후 인식 불가 메시지가 뜨자 안되는 것 같다고 했지만 내가 밖으로 나와서 5-6번 재부팅을 하자 유심을 인식했다. 오늘의 교훈, 대리점 직원도 잘 모른다. IOT의 세상답게 스스로 똑똑해지자.
2010년부터 메인 핸드폰으로 아이폰만 사용해왔지만 하나의 운영체제에 익숙해지는 것이 싫어서 안드로이드나 윈도우 모바일 등 다양한 운영체제를 가진 스마트폰을 수집해왔다.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보니 다른 운영체제를 쓰는 게 어색하지 않았지만 전화 용도로 본격적으로 안드로이드폰을 사용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넥서스5의 레퍼런스 특유의 사용자 환경과 안드로이드의 확장성이 생각보다 너무 편안하게 다가왔다.
5년 전에 출시한 넥서스5는 현재 마시멜로 버전까지 운영체제가 업데이트되어 있다. 하지만 직접 사용해보니 각종 클라우드와 메일앱, 노트앱, SNS를 설치해도 약간의 버퍼링을 제외하고는 빠르게 반응했다. 쇼핑앱을 몇개 설치하자 느려져서 바로 삭제했지만 기본 사용 중심으로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어서 당분간 그대로 쓸까 살짝 고민도 했다. 하지만 배터리가 너무 일찍 닳았고 레퍼런스폰을 써보면서 구글이 직접 만든 레퍼런스폰인 픽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아이폰과 픽셀을 놓고 고민하다가 딱 1년만 써보자는 생각으로 픽셀 중고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픽셀은 국내 출시가 되지 않은 제품이지만 매니아들이 많아서 제법 많은 제품이 중고 기장에 풀려 있었다. 하지만 픽셀2,3는 중고 가격도 각각 50만원대, 90만원대 정도 하기 때문에 난 보다 저렴한 픽셀1을 찾기 시작했다. 2년 전쯤 나온 모델이라 찾기 어려웠지만 일주일 정도 발품을 파니 거의 새것 같은 느낌의 제품(용량 128G, 블랙)을 19만원에 구입할 수 있었다. 픽셀1을 구입한 것은 가격도 있지만 사이즈 때문이었다. 아이폰6 시리즈와 거의 동일한 사이즈이기 때문에 아이폰SE만큼은 아니지만 한 손 사용에 최적화되어 있다. 다만 아이폰6보다는 2mm정도 더 두껍다.
전에 사용하던 분이 나처럼 기계를 좋아하시는 분이었는데 장난감처럼 가끔씩 쓰던 녀석이라 상태가 좋았다. 국내에 케이스와 필름이 팔지 않아서 바로 사용하기 어려울 수 있겠다 싶었는데 판매하시는 분이 이미 기본 케이스와 필름을 적용해 놓으셔서 집에 오자마자 바로 유심 작업 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알리에서 케이스 6개, 필름 4장, USB-C타입 충전잭 3개를 2만원 정도에 구입했다. 한달 후쯤 오겠지만 그만큼 저렴하다 보니 소모품으로 쓰는 디지털 제품은 대부분 알리를 이용하고 있다.
고속충전이 지원되는 아답터와 양쪽 모두 USB-C타입으로 되어 있는 충전잭이 함께 들어 있다. 220V 변환 코드에 바로 꽂아서 사용할 수 있고 여기에 충전하면 핸드폰 잠금화면에 '고속 충전 중'이라는 메시지가 뜬다. 일반 충전기에 꽃으면 '충전 중'이라는 메시지가 뜬다. 그런데 나는 잘 때 충전을 하는 편이라서 고속 충전의 편리함을 크게 느끼지는 못했다.
하드웨어만 놓고 보면 그냥 요즘 나온 예쁜 폰들의 보급형 버전을 보는 것 같았다. 투톤으로 되어 있는 뒷면과 구글 로고인 'G'가 있는 것이 조금 특색있게 보일 뿐 그 외 요소는 특별히 아름답지도 투박하지도 않았다. 전반적인 평이라면, 평범하고 무난하다.
하지만 전원을 켜고 화면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구글의 안드로이드의 사용자 환경이 이렇게 아름다웠나. 마치 애플에서 만든 구글폰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 동안 안드로이드폰에서 본 파편화된 디자인이 하나의 틀로 통합되어 있었다. 쓰면 쓸수록 사과 향기가 짙게 나는 것이 신기해서 검색을 해보니 그 중심에 구글이 2014년도부터 적용한 머티리얼 디자인이 있었다.
머티리얼 디자인은 윈도우의 플랫 디자인과 애플의 과거 스큐오모피즘의 장점을 절묘하게 섞은, 형태는 단순하지만 색상은 화사한 제법 똑똑한 디자인이다. 다만 내가 그 동안 다양한 안드로이드폰들을 접하면서도 이 느낌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은 제조사마다 독자적인 UI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구글이 외주 제작 시스템으로 만들어 온 넥서스 시리즈를 버리고 자체 제작 시스템으로 픽셀을 새롭게 출시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직접 써보면 확실하게 느껴지는데 사용자 환경의 통일감이 생각보다 너무 편하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터치할 때 느껴지는 안드로이드 특유의 미세한 버벅거림과 붕 떠 있는 느낌도 거의 없다.
넥서스5에는 마이크로 유심을 쓰고 픽셀은 나노 유심을 쓰기 때문에 바로 유심기변을 하려면 커팅을 해야 했다. 커팅 가이드는 구글에 검색하면 파일을 바로 구할 수 있다. 인쇄할 때 이미지 사이즈 그대로 출력하는 것이 가장 좋다. 가끔 105%로 하라는 분도 있지만 난 100%로 해서 지금까지 모두 성공했다.
How_to_cut_Mini_and_Micro_SIM_to_Nano_SIM.pdf
사람마다 커팅하는 방법이 다르겠지만 난 유심에 양면 테이프를 붙이는 방법을 사용한다. 종이 위 도안에 맞게 유심을 정확히 붙인 후 자를 대고 칼질을 하면 된다. 이 때 칼질을 너무 세게 하면 커팅 과정에서 유심 위치가 변동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를 커팅할 때마다 10~20번씩 살살 칼질을 하는 것이 좋다.
이번 커팅은 칩 부분까지 커팅을 해야 해서 난이도가 좀 있었다. 칩 부분까지 커팅을 하는 것은 처음인지라 검색을 통해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하고 작업에 들어갔다. 그래도 막상 잘려나간 부분을 보니 과연 인식할까 걱정이 되었지만 숨도 쉬지 않고 섬세하게 작업을 했기 때문에 커팅 자체는 어긋나지 않게 잘 된 것 같았다.
아래 사진을 보면 왼쪽이 마이크로 유심을 쓰는 넥서스5의 유심 트레이고 오른쪽은 나노 유심을 쓰는 픽셀1의 유심 트레이다. 넥서스에서 쓰던 3G용 마이크로 유심을 그대로 사용했다.
커팅을 하기 전 마이크로 유심 두께는 0.67mm이고 나노유심은 0.6mm이기 때문에 그냥 넣으면 유심 트레이가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블로그 포스팅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몇 주 전 어머니 폰을 교체해드리면서 커팅하고 넣었을 때는 큰 문제가 없어서 그냥 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픽셀 유심 트레이에 커팅한 유심을 넣어보니 정말로 약간 뜨는 증상이 발생해서 400방 정도 되는 사포에 뒷면을 살짝 갈았다.
유심을 넣은 후 불안불안한 마음으로 전원으로 켜니 바로 KT 로고가 뜨면서 이번에는 한 방에 인식했다. 국내 미출시된 모델이디 때문에 KT 전산망에 등록된 단말기명은 'OPENMODEL2'라고 되어 있었다. 통신사에 IMEI를 불러주고 등록하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아이폰SE 때 등록했다가 오히려 더 느려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 당분간은 그냥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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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셀을 구입하기 전 내가 하려는 방법과 동일한 방법으로 픽셀을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없고 검색도 되지 않아서 구입 과정부터 유심 적용까지 세세하게 적다 보니 글이 길어졌다. 게다가 픽셀폰에 대한 리뷰도 대부분 2나 3 또는 XL 버전이 대부분이라서 하드웨어에 대한 사진도 많이 넣었다. 꼭 픽셀이 아니라도 하더라도 해외 직구폰의 경우 주파수가 3G망을 지원하면 동일한 방법으로 유심 적용이 가능하다.
8년 동안 아이폰만 써왔기 때문에 안드로이드폰을 쓰는 것이 어색할 줄 알았는데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글 서비스의 총화를 보니 더이상 아이폰이 생각나지 않는다. 한 일년 정도 사용해보고 다시 애플에 귀의하려고 했는데 이 정도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사과를 품은 안드로이드는 너무 매력적이다.
"미안해요, 잡스. 그렇다고 아이폰이 싫어진 것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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