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교육계에는 '미래학교'라는 화두로 다양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알파고 이후로 학교가 변해야 한다는 말은 끊임없이 들렸지만 본격적으로 '미래'라는 단어를 쓰면서 실천의 영역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부터였던 것 같다.
지금은 그만두었지만 대안교육 현장에 십 년 정도 몸을 담았기 때문일까. 올해 초에 공립 대안학교 설립 모임에 참여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새로운 시도와 창의적인 생각들은 언제나 이질적인 여러 집단의 모였을 때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제안을 대부분 수용하는 편이다.
4월 첫 모임에 갔을 때 장학사, 학부모, 대안학교 교사, 공교육 교사 등 대략 20여명이 한 자리에 모여서 모임 취지와 좋은 교육에 대한 자기 생각을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다. 그 이후로 별도의 모임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코로나 때문에 모임 자체가 사라졌나 보다 생각했는데 얼마 전 연락이 와서 두 번째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사이에 이미 메인 연구진이 구성되었고 나는 아이디어 모임 정도에 초청한 것 같다.
미래형 공립대안학교 추진 단계에서 세우고자 하는 학교 이름(가칭)은 '해리포터학교'다. 처음에는 매우 뜬금없다고 생각했는데 논의 과정에서 계속 이야기하다 보니 나름 친근감이 생겼다. 다양한 이름을 놔두고 왜 '해리포터'라는 말을 썼을까 생각해 봤는데 아마도 고교자유학년제로 나름 잘 안착한 공교육 모델인 '오디세이학교'를 본뜬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건신대학교대학원 하태욱 교수님의 설명으로 모임을 시작했다. 현재 미래교육에 대한 전 세계적인 흐름에 대해 일괄적으로 정리해주셔서 오늘 모임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잘 알수 있었다. 다만 이 정도의 논의라면 적어도 1주일 정도는 미리 주제를 공유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나와 함께 초대받으신 많은 분들이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지만 나온 이야기들을 정리해서 들어보면 결국 피상적인 논의 이상 진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시부터 5시까지 '교육철학, 교육과정, 교육환경' 이렇게 3가지 주제를 가지고 돌아가면서 회의를 했다. 모인 사람들의 경험의 폭과 차이만큼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정말 이렇게만 하면 좋은 학교를 수십, 수백 개가 나올 정도로 재미있고 참신한 아이디어들도 있었고 현실적인 고민 속에서 나온 이야기들도 있었다.
하지만 3시간 동안의 토론에 참여해서 얻은 나의 결론은 이미 좋은 교육 모델은 너무 많다는 것, 다만 그것을 공교육에서 실천하기에 유연성이 너무 떨어진다는 것이다. 4월 모임부터 오늘 모임까지 참가자에게 자유롭게 상상해달라는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지만 공교육 현장에 있는 선생님들의 말을 정리해보면 결과까지 가면 결국 이런저런 조건 때문에 상상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팽배했다.
대안교육이 만들어지고 대안교육의 경험을 바탕으로 혁신학교도 만들어지면서 교육 전반적으로 좋아지고 있는 점은 분명해 보이는데 정작 교육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선생님들은 점점 힘이 빠지는 느낌을 받았다.
작년에 미래교육에 대한 교육청의 지원금을 받아 여러 대안학교의 교육과정을 모아서 학습 축제를 진행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미래씨의 오늘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축제를 기획했는데 '미래'라는 단어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서 마지막에는 축제 이름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미래'라는 단어를 환경을 훼손하는 소비 중심의 대도시 문화로 바라보기 때문일 수도 있고 기계 중심의 인위적인 디지털 중심 문명과 연관시켜서 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십년간 겪어본 대안교육은 지금 이 모습 그대로 보더라도 우리가 상상하는 다양한 형태의 미래교육에 매우 근접한 형태를 띠고 있다고 생각한다. 알파고 이후로 나오는 모든 핵심적인 실천 논의들을 대안교육은 이미 20여 년 전부터 교육과정 한 복판에서 다루고 있었다. 미래학교를 따로 설립하는 것보다 기존의 대안교육과 협력해서 파트너십을 잘 설정하는 것만으로도 미래교육에 좀 더 빨리 다가설 수 있을 텐데 자원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물론 대안교육이라고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오랜 노력 끝에 안정적인 시스템이 어느 정도 마련했지만 안정화와 함께 공교육과 비슷한 문제들도 서서히 생겨나고 있다. 혁신학교가 뜨면서 오히려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고 여러 다양한 이슈가 겹치면서 운영 자체가 어려워진 곳도 많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입시 교육을 거부하는 학교들도 지금은 학생수 모집을 위해 입시 교육을 병행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과 과정은 다르지만 공교육이나 대안교육이나 현재 똑같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생각한다. 공교육은 더 이상 사람들에게 신뢰 받지 못하고 있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만든 대안학교 역시 사람들에게 교육의 대안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공교육과 대안교육이 제대로 만나서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새로운 교육의 틀을 만들어가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오고 갔지만 난 이 모임이 더 재미있어지려면 공교육, 대안교육 이외에 교육과 상관이 없어 보이는 다양한 성격의 집단이 더 많이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동종 모델의 교류가 아닌 이질적인 집단의 뜬금없고 거침없는 이야기 속에서 더 잘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선택하고 진행하는 것은 연구진과 교육청의 몫이다. 해리포터학교가 영화 속에 나오는 학교처럼 진짜 재미있고 매력적인 학교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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