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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자전거도둑

혜민스님의 집은 왜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을까

by 식인사과 2020.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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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tvN 유튜브채널

 

혜민스님이 출연한 온앤오프 예능프로그램이 문제의 중심에 섰다. 아마도 제작진은 혜민스님의 스마트한 개인 생활을 통해 대중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주고 싶었을 것 같다. 남산 타워가 보이는 전망이 좋은 집에 살면서 선식이 아닌 대중의 음식을 먹고 최신 에어팟을 귀에 꼽고 스타트업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는 모습은 분명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스님의 모습은 아니다. 

 

사실 영상 자체만 놓고 보면 크게 문제될 부분은 없다. 요즘에는 웬만한 큰 절에만 가도 고급 중형차를 모는 스님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시대가 변했는데 스님이라고 옛날 방식의 삶을 그대로 살라고 하는 것도 편견에 가깝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불편해하고 비난하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어쨌든 혜민 스님은 결국 SNS를 통해 사과문을 올리고 활동 중단 선언을 했다. 

 

며칠 사이의 일들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지금까지 출가 수행자로서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세상에 불법을 전하려고 노력해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부족함으로 인해 많은 분들께 불편함을 드렸습니다. 승려의 본분사를 다하지 못한 저의 잘못이 큽니다. 이번 일로 상처 받고 실망하신 모든 분들께 참회합니다.

저는 오늘부로 모든 활동을 내려놓고 대중선원으로 돌아가 부처님 말씀을 다시 공부하고 수행 기도 정진하겠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부족했던 저의 모습을 돌아보고 수행자의 본질인 마음공부를 다시 깊이 하겠습니다.


혜민스님 인스타그램 中

 

출처 : tvN 유튜브채널

 

혜민 스님의 책은 여러 권 있지만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한 것은 2012년에 출간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다. '하버드 출신 스님의 책'이라는 마케팅 덕분에 이 책은 누적 판매수 300만 권이라는 어마어마한 판매고를 올렸다. 그 이후 다양한 강연에 출연하면서 '청년멘토'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지만 이후 논란이 되는 발언들을 계속하게 되면서 대중적인 호감도는 많이 낮아졌다. 이번 논란은 이런 논란들이 겹겹이 쌓이면서 한 순간에 폭발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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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혜민스님을 잘 모른다. 아주 가끔 그의 이야기를 온라인으로 접하기는 했지만 깨달음의 내용이라고 말하는 내용들이 빈약해서 항상 패스했던 인물이었다. 오히려 내 고민은 이렇게 낮은 수준의 치유의 말에 사람들이 왜 열광하고 힐링이 되는가였다. 혹시 몰라 혜민스님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가서 영상 몇 편을 봐도 내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땡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줄 정도의 스님도 아니다.  

 

언젠가부터 모든 문제를 마음의 문제로 치환하며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거짓 위로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얼핏 보면 상대방을 굉장히 위하는 것 같지만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상대방이 약해진 틈을 타서 교묘한 방법으로 자기 힘을 얻는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가짜 위로를 받은 사람들이 자기 삶의 본질과 점점 멀어지면서도 상대방을 매우 신뢰한다는 점이다.

 

출처 : Unsplash

 

혜민스님의 집은 왜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을까. 다른 한편으로는 혜민스님의 이중성만큼 그를 소비하는 대중들도 이중적인 것 같다. 대중적 이미지 때문에 그를 환호하면서도 그의 재산에 대한 평가만큼은 대중적이지 않다. 남산타워 보이는 집에 살고 페라리를 몰고 에어팟을 사용하면서 스타트업을 운영하면 스님이 아닌 걸까.

 

혜민스님의 문제는 불법이 부족한 언행의 문제이지 그의 재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난 이번 일을 계기로 혜민 스님이 활동을 중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본업에 더 충실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큰 깨달음으로 사람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는 멋진 스님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으면 좋겠다. 

 

p.s

현각스님이 자기 SNS에 신랄하게 비판을 했다가 통화 하나로 혜민스님에 대해 평가가 '기생충'에서 '아름다운 사람'으로 바꾼 것을 보고 의아했다. 조계종을 작심하고 비판하고 떠난 현각스님이 좀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좀 아니지 싶다. 깨달음을 놓고 설전을 벌인 것도 아니고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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