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유태오라는 배우의 모습을 보고 참 깔끔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매력을 뚝뚝 흘리고 다니는 다니엘 헤니의 순한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 다니엘 헤니가 진한 맛의 다크 초콜릿 같다면 유태오는 우유가 들어간 마일드한 초콜릿 같다.
젠틀하고 깔끔한 신사 같은 이미지에 독일 교포 출신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유태오는 미국 유학 시절 자취를 하면서 익힌 수준 높은 요리 실력과 독특한 구조의 집 인테리어 덕분에 방송 내내 돋보였다. 아직 그의 연기를 보지는 못했지만 그가 가진 외부의 환경 요소들은 그를 충분히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화면에서 잠시 스쳐 지나가듯이 언급한 그의 아내 니키리라는 작가가 궁금해졌다. 방송에서는 그녀가 유명한 아티스트라는 것과 11살 차이의 연상연하 부부라는 정보 외에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니키리는 한국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뉴욕에 가서 현대미술을 공부했다. 사진을 매체로 하지만 니키를 사진작가가 아닌 현대미술 작가라고 하는 이유는 그녀 스스로 사진 작품의 피사체가 되기 때문이다.
니키리의 작업 방식
1. 어떤 부류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그룹을 정한다
2. 그 사람들과 비슷한 모습을 변장을 하고 그 속으로 들어간다
3. 그들과 함께 지내는 모습을 누군가 사진으로 촬영한다
아래 사진을 보면 모두 니키리가 사진 속에 등장한다. 그녀 스스로 밝히듯 자신의 정체성은 '한국인'이지만 사진 속의 니키리는 힙합, 히스패닉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처럼 보인다. 나의 정체성은 나의 본질만큼 누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사진 촬영을 하기 위해 그녀는 3개월 정도 특정 그룹의 일원이 되어 멤버들과 친밀한 관계를 만든다고 한다. 나와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가진 이들과 교류를 하면서 그 그룹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 정서를 사진 속에 녹여낸다. 그래서 그녀의 사진을 보면 인위적인 느낌이 전혀 없다. 마치 오랜 세월 함께 한 이들과 자연스럽게 찍은 사진 같다.
내 안의 아이덴티티 중에서 펑크족이든 여피족이든 모든 게 표출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외부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정체성에서 끄집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SPECIAL INTERVIEW] 아이덴티티, 그 본질에 뛰어들다 <아티스트 니키 리> 인터뷰 中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사진은 특별한 순간을 기록하는 도구이거나 작가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지금, 사진은 모든 사람들의 창조적 도구가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좋은 '작품'들은 사진가들의 손에서 태어나는 것 같다.
사진은 더이상 예술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하지만 니키리의 작업을 보고 있으면 같은 도구라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녀의 사진을 보면서 사진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그 동안 어떤 사진을 찍고 있었을까. 잠시 둘러본 나의 스마트폰 앨범에는 블로그 리뷰용 사진만 가득하다. 블로그용이 아닌 본질을 담은 사진을 찍고 싶다. 내 마음을 찍을 수는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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