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15년 전 비보이 퍼포먼스 뮤지컬에 조연출로 참여한 경험을 계기로 스트릿 댄스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 스트릿 댄스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지금도 내 최애 취미 중 하나가 유튜브에서 라킹, 비보잉, 팝핀 등 스트릿 댄스 관련 영상을 보는 것이다.
스트릿 댄서들의 춤을 접하고 나면 아이돌 스타들이 추는 춤들은 어린아이가 추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이돌이 춤을 못 추는 것이 아니라 그냥 춤의 레벨이 다르다. 움직임 자체에만 집중하는 댄서들의 춤과 노래, 외모, 댄스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퍼포먼스 중심의 아이돌의 춤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유튜브에는 좋은 춤을 소개하는 채널이 정말 많지만 그 중 한국을 대표하는 채널로는 원밀리언댄스스튜디오가 있다. 형태로만 보면 그냥 강남에 있는 댄스 학원일 뿐이지만 현재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2420만 명으로 K팝의 성지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아이돌 정보 차트쇼 'TMI뉴스'에서 '스트릿 우먼 파이트(이하 스우파)'를 처음 소개했을 때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제대로 된 스트릿 댄스를 볼 수 있다는 점에 매우 기대를 했다. 내가 좋아하는 댄서들도 출연하기 때문에 더 기대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1회를 보고 이게 뭐지 싶었고 2회를 보고 더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들 재미있다고 난리가 난 스우파를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정작 댄서들의 춤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스우파를 연출한 사람은 오디션 프로그램 연출로 잔뼈가 굵은 최정남 PD다. 이 분은 슈퍼스타K의 조연출을 시작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에 입문하게 되었는데 그 이후에도 내로라하는 주요 프로그램들을 연출했다고 한다. 기사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기획 의도도 나쁘지 않고 PD는 다수의 댄스 관련 오디션 프로그램을 연출하면서 춤에 대한 애정도 많은 편이다.
하지만 스우파를 보면 오디션이라는 플랫폼이 주는 재미에 집중하느라 춤이 부각되지 않는다. 프로그램 내내 센 언니들의 기싸움만 볼 수 있을 뿐 정작 춤은 보이지 않는다. 댄스 배틀 대회를 영상들을 보면 '배틀'은 춤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스우파는 '오디션'에 재미를 더하기 위해 춤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중성, 화제성, 시청률, 프로그램 종료 이후 확장 가능성 등을 고려하느라 이런 연출을 할 수밖에 없는 점도 이해는 된다. 아마도 프로그램이 끝나면 댄서들의 글로벌 진출을 모색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점은 댄스의 방향이 춤 자체가 아닌 퍼포먼스에 집중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싸움 구경이 아니라 춤 구경을 하고 싶다.
아쉬운 마음에 툴툴 대면서 글을 쓰고 있지만 그래도 난 이 프로그램이 사회적으로 엄청 성공했으면 좋겠다. 국내 댄서들의 열악한 창작 환경이 얼른 개선되었으면 좋겠고 댄서들의 실력만큼 좋은 대우를 받아서 멋진 춤을 계속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싸이나 BTS처럼 글로벌 시장에서도 마음껏 기량을 뽐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나마 최근 공개된 메가크루미션은 조금 볼만하다. 어딘가 애매한 카메라 워킹과 균형이 맞지 않은 화면 연출은 살짝 아쉽지만 지금까지 나온 미션 중에 가장 춤에 집중한 부분인 것 같다. 모든 영상 클립을 가져오기는 어려워서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한 프라우드먼의 영상을 공유한다. 해당 영상으로 들어가면 다른 크루들의 멋진 춤들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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