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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천개의공감

천재와 천재'들' (20080727)

by 식인사과 2013.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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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잠깐 이글루스에 블로그를 운영했었다. 티스토리에 둥지를 틀 때처럼 비장한 각오로 시작을 했으나 그 때는 마음 뿐이었는지 글 달랑 4개 올리고 흐지부지되었던 것 같다. 아까비! 그래서 그 때 글들을 이 곳에 옮긴다. ㅎㅎ

 

밑의 글은 예술을 전공했던 나에게 오랜 의문이었던 천재성에 관련된 글이다. 예술 관련 학과에 다녔던 또는 다니고 있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하게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주변 친구들의 영감 어린 작품들 또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은 예술적인 작업들을 보면서 본인에게는 그런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 좌절하는 친구들이 꽤 많다. 일부는 그 과정에서 전과를 하고 졸업할 때쯤 취업 전선에 뛰어들기도 한다. 그런 모습들을 여럿 보면서 '천재'에 대한 개념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이런저런 관련 글들을 읽으며 그런 개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약하면 우리 안에는 누구나 '천재'를 가지고 있다는 것- 천재는 인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자신만의 내면의 힘이라는 것이다. 그래, 결국 자기 이해가 답이다.

 

 

 

천재

 

요 근래 주위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다가 천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이야기하다 보면 우리가 천재에 관해 얼마나 관념적으로밖에 알고 있지 못했었는지 느끼고는 퍼뜩 놀라곤 한다. (나만 놀라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내가 천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생활적으로 가깝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언젠가 아둥바둥 예술이란 것을 하고 있는 나의 '천재天才'없음을 한탄하며 쓰디쓴 소주 한잔에 쓰라린 가슴을 부여잡고 주위를 둘러보니 너무나 많은 이들이 '천재'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절대적이고 독보적인 천재 있음이 그 완전성을 담보하려면 '그러한' 천재를 지니고 있는 이가 단 한 명, 과거에 비해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고 하더라도 단 몇명으로 그쳐야 우리가 관념적으로 알고 있는 천재의 개념이 흠집이 가지 않겠지만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적어도 한번씩 스쳤던 사람들 중에는 너무나 많은 이들이 천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혹여나 나만 그런 거 아니냐고 묻는 이들에게는 별로 친구가 없느냐고 반문하고 싶고 천재의 기준이 뭐냐고 묻는 이들에게는 솔직히 그건 나도 모른다고 답하고 싶다.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천재의 개념선상에서 과연 천재의 기준이 있었던가.

 

천재론

 

조금 궁금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천재天才'라는 개념이 과연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인간이 네발로 걷던 시절부터 초월적으로 생겨난 개념일까- 분명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천재 있음은 그런 것과 비슷할 것이다. 뭔가 근원적이고 본질적이고 절대적인 모든 인간의 고유 가치의 극을 보여줄 수 있는 원대하고 숭고한 그 무엇, 경배하고 찬양의 대상이 되어야만 할 것 같은 원시적 느낌의 언덕 너머의 초월적인 존재. 여기서 잠깐 김광복 선생님의 똥침 강의를 들어보자.

 

낭만주의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략)

 

♠ 천재론 : 고전주의의 특징인 고전에 대한 모방은 이미 재현된 현실을 습득하는데 정열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낭만주의자들은 천재적인 상상력과 직관에 의해 스스로 현실을 창조하는 것을 으뜸으로 여겼습니다. 즉, 고전주의의 천재는 이미 존재하는 전범(典範)의 습득을 통해 좀 더 세련되고 교양을 쌓은 인물이라는 뜻이지만, 낭만주의의 천재는 일상의 논리를 벗어나 무제한의 상상력에 의한, 현실을 재창조하는 능력을 갖춘 인간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출처 :: http://www.hongkgb.x-y.net/main.htm)

 

"일상의 논리를 벗어나 무제한의 상상력에 의한, 현실을 재창조하는 능력을 갖춘 인간" - 낭만주의 시대 다음 바로 사실주의가 등장했고 사실주의가 등장하자마자 바로 무림에 진출한 反사실주의 시대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천재의 관념이 사실은 별로 멀지 않은 가까운 시대의 역사적 산물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천재는 천성적 자질인가 아니면 역사적, 사회적 산물인가.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대부분의 친구들은 전자에 손을 들어주는 편이며 가끔 가다가 후자에 손을 들어주는 나같은 놈이 몇몇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탈탈탈근대의 대한민국의 천재론_엄친아

 

대한민국 반공 또라이들이 주구장창 떠들어대는 말이 하나 있다. 우리의 적은 북한이다~(아아아~) 하지만 우리들의 적은 따로 있었으니 그 이름하야 엄. 친. 아. 적이란 것이 뭐 따로 있었던가. 날 괴롭히고 날 못살게 굴면 그것이 바로 적일 텐데 엄마 친구 아들이 딱 그짝 아니던가. 중요한 것은 우리들은 그 적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볼 수도 없는 적이 쏟아 붇는 가공할 위력의 펀치에 우리들은 가끔 넉다운이 되기도 한다. 어머니들은 얼마나 자식들이 못났으면 엄마 친구 아들 자랑에 자식들의 괴로움을 나 몰라라 하셨던 것일까라고 한번쯤은 어머니를 원망해 볼수도 있었겠지만 사실 원망의 그 순간에 나 역시 누군가의 엄친아가 되어 그 사람을 못살게 굴고 있을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길 바란다.

 

엄마 친구 아들은 뭘 그렇게 잘하는지 걸핏하면 서울대요 흥하면 하버드 유학에 퍽하면 집 한채 마련하고 윽하면 어머니 해외 여행 시켜 드린다. 그런데 어찌 된 게 그런 놈들이 한 두명이 아니다. 일등은 아무나 하는지 일등 아닌 엄친아가 없고 서울대를 못가는 엄친아가 없다. 음악이면 음악, 그림이면 그림, 글이면 글 못하는 것이 없는 엄친아는 우리 주위에 정말이지 우글거릴 정도로 많다. 로잔대학교 대학원 조직 공학 박사라는 명함에 화학 관련 수상 경력과 그에 대한 특허까지 낸 루시드폴의 조윤석은 우리가 소위 말하는 천재의 범주에 들만한 사람이며 동시에 엄친아다. 언젠가 그의 인터뷰 내용을 본 적이 있는데 엄친아는 뭔가 달라도 다르다. 공부를 계속 할 생각 없냐는 질문에 그의 대답. "공부는 재미 있어서 한 거예요"

 

유용성

 

천재는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천재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그림도 잘 그리고 노래도 잘 부르고 공부도 잘 하고 뭘 했다하면 뭐든지 척척 해내는 그런 이가 내 주위의 있을 때 우리는 빈정대며 한마디 툭 던지며 그 말에 위안을 얻는다. " 걔 천재잖아" 나보다 뭐든지 잘하는 그런 이가 천재가 아니라면, 그를 천재라고 인정하지 않는 순간 나는 볼품없는 쓰레기로 전락해버리고 말 테니까. 그럼 면에서 천재는 조금은 유용하다. 자살률을 몇 퍼센트는 낮추었을 테니까.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천재가 없는 사회보다는 천재가 있는 사회가 훨씬 더 행복할 여지가 많다. 

 

천재'들'

 

천재가 있다 없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결과적으로 천재라는 개념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시대의 천재의 개념이 서로 달랐듯이 시대 분위기에 맞추어 사회적으로 재생산되는 하나의 이미지라는 것이다. 현대 시대에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존재였던 천재는 없겠지만 분명 천재'들'은 있으며 그것이 지금의 다원적이고 다문화적 사회에 보다 적합한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그것이 비록 허상이더라도 말이다. 무엇보다도 천재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해 그리고 천재의 존재 여부에 대해 묻기 전에 우리가 미리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은 우리가 과연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며 그것이 전제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 안의 내재된 천재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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