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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자전거도둑

종북과 종박

by 식인사과 2013.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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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하철을 타고 이동 중에 노인석에 두 할아버지가 큰 소리로 싸우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가볍게 말다툼을 하시는구나 싶어 인터넷 기사나 보려고 스마트폰 화면에 눈을 돌렸는데 두 분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시더니 결국 지하철 안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싸우시는 게 아닌가. 그 내용을 옆에서 찬찬히 들어보니 최근 시국선언으로 정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천주교의 정의구현사제단 이야기였다.

 

인터넷 기사를 통해 박창신 신부의 발언을 자세히 알고 계신 할아버지는 빨갱이가 아닌 사람에게 빨갱이라고 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말씀하시고 아마도 박창신 신부가 누구인지도 모를 다른 할아버지는 정의구현사제단은 옛날부터 빨갱이였고 지금도 빨갱이였다고 소리 높여 주장했다. 그 옆에 계신 또 다른 할아버지는 둘 다 시끄러우니 조용히 하라고 말씀하셨다. 세 할아버지의 모습 속에서 우리 사회의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5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선거철만 되면 '북풍'이 폭풍이 되서 여론을 휩쓸고 다니고 아마도 이제 색이 바랠대로 바랬을 '빨갱이'들은 대한민국을 전복시키기 위해 도처에 널려 있다. 그리고 이젠 '종북'이다. '종북'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기 위해 어느 보수주의자의 시선을 엿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권석천의 시시각각] 그렇다면 나도 종북일까 | 중앙일보 | 2013.11.27

 

'종북'과 더불어 요즘 핫하게 뜨고 있는 말이 있으니 바로 '종박'인데, '종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박'이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를 알아야 한다. 올해 국정원 사건 이후로 시작된 부정선거 논란은 박근혜 대통령을 꼬리표가 되어 따라다녔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각종 의혹에 박근혜 대통령의 대답은 시종일관 노코멘트다. 대신 선거에 대한 의혹을 캐내려는 자들을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하나둘씩 '숙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두환 비자금, 장성택 실각 등 각종 스캔들을 터뜨려 소문을 잠재우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방법은 그들이 가장 혐오하는 '종북' 세력이 추종하는 북한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타임지 표지를 가득 채운 '독재자의 딸'이란 표현이 대한민국 내에서 '종박'이라는 말로 변신한 것은 이런 연유에 기인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 시대에 가능했던 철권 통치를 부러워했던 것일까. 아버지 말 한마디만 여당이든 야단이든 시민이든 그냥 무릎 꿇고 벌벌 떨던 그 때를 그리워했던 걸까. 그게 아니라면 아직도 독재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북한이 부러웠던 것일까. 태생이 다른 '종북'과 '종박'이 절묘하게 닮아있는 이 우스운 코미디 같은 현실 앞에서 그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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