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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도서관/나혼자맛집

[생각의부엌] 몽글몽글 아침밥

by 식인사과 2016.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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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먹는 것은 좋아하지 않지만 요리를 하는 것은 좋아하는 편이다. 서로 다른 식재료들이 화학작용을 일으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과정은 마치 한 편의 예술작품을 보는 것만큼 흥미진진하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부엌에 절대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셨던 어머님 덕분에 요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었지만 결혼을 하고 나서는 내 스스로 먹을 음식을 해먹을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님이 해주시는 음식을 먹기만 했던 전에 비해서는 번거로워진 것이 사실이지만 그 것을 뛰어넘는 요리를 하는 즐거움이 생겼다.


얼마 전에는 아이들과 여행을 함께 다녀오면서 열흘동안 15명 분의 삼시세기를 혼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요리를 처음 해보지만 크게 걱정되지 않았고 몇가지 레시피 앱을 다운 받아 열흘 동안의 식단을 세웠다. 똑같은 음식이 나오면 지루할까봐 매일매일 다른 음식을 요리했고 그런 정성이 통했는지 아이들은 맛있게 먹었다고 입을 모아 칭찬을 했다. 칭찬을 듣는 것도 좋았지만 나에게는 매일 아침마다 마트에 장을 보러다니며 아이들에게 무엇을 먹일까 고민하는 시간이 더 큰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생각보다 요리하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인 것 같다. 


매일 해먹는 음식들을 사진 찍어서 가끔씩 인스타그램에 올리다가 어느 순간부터 밥을 하는 과정을 글로 기록하고 싶어졌다. 레시피는 웬만한 요리앱에 모두 나와 있으니 패스! 나도 3~4개 정도의 앱을 다운 받아서 그 때 그 때 필요한 것들을 선택해서 사용하는데 한가지 요리에 대해 정말 다양한 요리 방법이 소개 되어 있다. 스마트 라이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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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밥은 된장국, 리챔구미, 계란 후라이, 밑반찬으로 정했다. 장모님이 보내주신 토실토실한 양파와 감자를 먼저 꺼내서 쓱쓱 썰어준다. 





마늘 역시 장모님이 보내주신 것을 까서 사용했다. 그 전까지는 마늘은 마트에서 깐마늘을 구입해서 사용했는데 직접 까서 사용해보고 나서는 앞으로 깐마늘은 사지 말아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마늘의 향이 다르다. 직접 까는 과정은 매우 번거롭기는 하지만 마늘 특유의 깊고 그윽한 톡 쏘는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작년에 학교에서 직접 담근 된장이다. 만들 때는 메주 치대느라 힘들어 죽을 것 같다니 한 번 만들어놓으니 이렇게 필요할 때마다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어서 좋다. 된장의 양이 많아서 양쪽 부모님에게 필요할 때마다 드리는데 일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한참이 남았다. 된장국은 사실 된장만 맛있으면 아무것도 넣지 않아도 맛있다.





학교에서 부모님들이 장터를 운영하시는데 좋은 식재료를 현장에서 바로 공수하고 공동 구매의 형태로 나눈다. 김장철을 앞두고 무농약 고추가루를 판매하시길래 냉큼 구매했다. 된장국이지만 살짝 넣어주면 맛있지 않을까.





평소 천연 조미료를 찾고 있었는데 이번 추석에 아버지 수목장에 다녀오다가 셔틀 버스를 운영하시는 분이 인근에서 직접 재배해서 만든 표고버섯 가루를 구입했다. 이 녀석이 있으면 육수를 내지 않아도 충분히 맛을 낼 수 있다. 





두부, 마늘, 양파, 대파, 감자, 청양고추를 먹고 싶은 크기로 썰어준다. 재료의 양 역시 기본적인 비율이 있겠지만 본인이 먹고 싶은 만큼을 기준으로 직감대로 정해도 괜찮다. 난 국이든 찌개든 덮밥이든 식재료가 큼직하게 있는 것을 좋아해서 조금 크게 썰었다.  







식재료를 다듬고 나면 음식물 쓰레기가 참 많이 나온다. 매번 음식물 쓰레기를 봉지에 옮겨 담을 때마다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나 고민하지만 매일매일 나오는 쓰레기를 보며 그냥 버리게 된다. 양파 껍질이나 파뿌리 정도만 미리 벗겨서 국물용으로 보관하는 정도인데 뭔가 좋은 대안책이 있었으면 좋겠다.





앞의 식재료를 한번에 넣고 끓여도 괜찮겠지만 나는 모든 국요리를 할 때 야채 육수를 먼저 낸다. 그냥 식재료 중 야채만 먼저 넣고 끓여주면 되는데 야채는 끓이면 끓일수록 안에서 감칠맛이 나오기 때문에 다른 재료보다 오래 끓여주면 더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다. 야채가 어느 정도 익으면 된장을 풀고 표고버섯 가루 넣어주고 대파와 마늘과 두부를 넣는다. 한참 끓이다가 마지막에 청양고추를 넣은 후 조금 더 끓여주면 완성! 





하얀 달걀은 어렸을 때 먹어본 이후로 처음 먹는 것 같다. 얼마 전 수요미식회에서 황교익씨가 하얀 달걀이 훨씬 맛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왜곡된 토종 마케팅 때문에 갈색 달걀을 먹게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바로 하얀 달걀을 사려고 했지만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며칠 전 마트에 갔더니 하얀 달걀이 있어서 바로 구입했다. 하얀 달걀이 노른자 함량이 높아서 훨씬 고소하고 비린내가 덜 하다고 한다. (대형마트에서 흰색 달걀을 볼 수 없는 이유 | 한겨레)





리챔은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살살 구워준다. 스팸이 제일 맛있다고 생각했는데 리챔은 스팸보다 짠 맛이 덜해서 내 입맛에는 더 좋았던 것 같다. 햄들은 도대체 무엇을 넣었기에 이렇게 맛있는 것일까. 






내가 요리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플레이팅이다. 열심히 만든 음식을 대충대충 담아서 먹는다는 것은 좋은 예술 작품을 쓰레기장에서 감상하는 것과 같다. 금방 먹을 음식이지만 최대한 정성스럽게 담아서 주는 것이 내 음식을 먹어줄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어머님이 며칠 전 보내주신 고구마순 김치와 내가 담근 꽈리고추양파겉절이(?)를 기본 반찬으로 밥상을 차렸다. 밥에는 계란 후라이를 올리고 참기름 살짝 뿌린 후 깨로 마무리하면 고소한 향을 맡으면서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다. 차린 것은 별 것 없지만,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간단한 아침밥이라고 하더라도 국을 끓이고 반찬을 나눠 담고 계란을 부치고 햄을 굽다보면 시간이 꽤 걸린다. 하지만 밥을 먹는 것은 한 순간인데 그래도 이렇게 싹싹 비운 그릇을 보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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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든 나에게 즐거운 일을 찾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요리를 접하게 된지는 이제 채 일년도 되지 않았지만 아직까지는 귀찮은 느낌보다 더 도전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다. 재료들이 대부분 한식 재료들이라 한식을 주로 하게 되지만 나중에 요리하는 것이 더 익숙해지면 양식이나 일식, 중식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잘 먹는 기술은 결코 하찮은 기술이 아니며, 그로 인한 기쁨은 작은 기쁨이 아니다 

: 미셸 드 몽테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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