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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천개의공감

사랑니는 아이러니

by 식인사과 2018.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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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니가 좌, 우, 위, 아래 모두 나와 있다. 그 동안 크게 아픈 적이 없고 밥을 먹는데도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뽑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 딱딱한 것을 씹다가 왼쪽 아래 어금니 이빨이 깨지면서 사랑니와 어금니 사이에 충치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소에 두 이빨 사이에 음식물이 잘 끼어서 양치질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조금씩 충치기 생긴 모양이다. 

 

어렸을 때부터 다녔던 치과가 있었지만 이번에 새롭게 소개 받은 치과가 있어서 이번에는 그 쪽으로 갔다. 범계역에 있는 '본치과'라는 곳인데 의사 선생님이 내 치아 상태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시고 치료도 제대로 해주셔서 처음부터 매우 신뢰가 갔다. 의사 선생님이 내 치아 엑스레이 사진을 보면서 마치 전략 게임을 하는 게이머 같은 표정으로 고민하며 작전을 짜는 듯한 표정이 인상에 남는다. 어디를 가나 자기에게 주어진 문제에 해결하기 위해 탐구하고 연구하는 자세로 몰입하시는 분들을 보면 신뢰가 간다. 이제부터 내 인생 치과로 지정해야지.

 

사랑니 뽑는 과정에 대한 공포는 주위에서 너무 많이 들어서 오히려 뽑으러 가는 과정이 크게 무섭지 않았다. 그 동안의 경험상 으레 과장된 것들은 직접 대면하면 생각보다 별 볼일이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막상 얼굴 위에 천이 덮히고 입을 벌리고 살벌한 기계들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니 학습된 공포가 밀려오기는 했지만 역시 사랑니 뽑는 과정은 별로 아프지 않았고 발치 3일차 현재 잘 아물고 있다. 상처가 잘 아물지 않은 내 체질 탓에 발치 후 3일간 물만 마셨더니 겸사겸사 단식 효과도 있어서 체중도 줄었고 왠지 물만 먹는 식물의 기분도 알 것 같았다. 나름 일석 삼조다.

 

사랑니를 가져오고 싶었지만 최근에는 몸에서 나온 적출물은 개인 보관이 어렵다고 해서 사진만 찍어왔다. 생각해보니 사랑니와 직접 얼굴을 마주보는 것은 처음인지라 계속 신기하게 바라봤다. 가능한 원본 그대로 보존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 기질 탓에 사랑니도 내 몸에 그대로 보존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헤어지다니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이제 치아에 음식물이 끼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묵은 체증이 한 번에 내려가는 후련한 마음도 들었다. 두가지의 상반된 느낌을 동시에 가지는 것을 보면 인간의 마음이란,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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