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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엄마와 함께 두번째 서울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방학은 방학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학교 업무가 많아져서 시간을 내는 것이 빠듯했지만 그래도 간간히 찾아오는 이런 기회들을 그냥 넘겨버리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는 코레일 국내 패키지로 강릉 당일 여행을 다녀오려고 했는데 일주일 전에 패키지 상품이 취소되었다는 연락이 와서 코스를 서울로 변경했다. 작년 학교 여행으로 서울을 다녀온 뒤로 서울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는데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다. 가보고 싶은 곳은 많았지만 폭염이 이어지고 있어서 엄마가 좋아할만한 곳 중 실내 중심으로 코스를 정했다.
1코스 : 아기자기한 서촌 나들이 (일본식 가정식 백반 '진심', 대오서점, 통인시장, 고궁박물관)
경복궁역 2번 출구로 나와서 서촌을 한바퀴 도는 코스로 다음 지도에서 거리를 재보니 총 거리는 2.52km, 도보 시간은 37분이 나왔다. 하지만 우리는 점심도 먹고 구경도 하고 커피도 마시면서 이동했기 때문에 한바퀴 도는데 4시간 정도 걸렸다. '서촌'이라는 동네를 굉장히 낯설게 생각했는데 와서 보니 학교 업무와 관련된 미팅을 하기 위해 많이 왔던 곳이었다. 같은 지역을 오고 가도 일하기 위해 다니는 것과 여행을 위해 다니는 것은 확실히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경북궁역 2번 출구에서 엄마와 11시 반에 만나서 바로 점심 먹는 곳으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이상의 집' 전시관이 있어서 구경하려고 했지만 일요일과 월요일은 휴관일이어서 통유리 안쪽만 살짝 엿볼 수밖에 없었다. 이 날 계속 돌아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서촌의 볼만한 장소는 대부분 월요일이 휴관일이었다.
서촌에는 맛집이 많아서 뭘 먹을까 고민이 많았는데 마님의 추천으로 일본 가정식 맛집으로 잘 알려진 '진심'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서촌 골목의 재미있는 풍경을 보면서 걷다보니 금세 가게에 도착했는데 테이블 4-5개 정도 되는 작은 가게였다. 바로 도착했을 때 빈 자리가 없었지만 마침 한 팀이 거의 식사를 마친 상태여서 금방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부부로 보이는 젊은 남녀 두분이 운영을 하는 깔끔한 일본식 가정 백반집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하루 종일 가게를 열어놓고 장사를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가기 전에 시간 체크는 필수다. 하나하나 정성 들여 음식을 하시기 때문에 음식이 나오는 대기 시간이 일반 식당에 비해 긴 편이지만 그만큼 맛의 퀄리티가 높은 곳이다.
엄마와 마님은 명란아보카도덮밥을, 나는 육회&야끼니쿠덮밥을 주문했다. 추가로 도넛스시와 대동강 에일 맥주도 함께 주문했다. 처음 음식이 나왔을 때 양이 작아보였지만 다 먹고 나니 충분한 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맛에 대해서는 엄마와 마님과 나 셋 모두 만족했다. 얼핏 보면 싱거워 보이지만 과하지 않은 간의 깔끔하고 담백한 맛에 재료 본연의 맛이 더해지니 먹으면 먹을 수록 물리지 않은 소박한 감칠맛이 입 안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밥을 먹고 대오서점을 찾았다. 대오서점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으로 1951년부터 지금까지 운영을 해오고 있는 곳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권오남 할머니가 직접 운영을 했는데 이제는 몸이 아프셔서 따님이 대신 운영을 하고 있었다. 헌책방으로만 운영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아 몇년전부터 카페 공간으로 개량하여 전시, 공연 등을 함께 기획하고 운영하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전환했다고 한다.
가기 전에 사람이 많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우리가 갔을 때 한 사람도 없어서 조용한 분위기에서 편안하게 있을 수 있었다. 서촌의 월요일은 대부분의 곳이 휴관을 하지만 한적한 분위기의 서촌을 느끼고 싶다면 월요일에 가는 것도 좋은 선택인 것 같다.
대오서점 안으로 들어가니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고풍스러운 풍경과 소품들이 날 반겨주었다. 물건 하나하나마다 세월의 흔적이 가득 담겨 있어서 마치 박물관의 유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왠지 모를 익숙한 느낌에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보니 오래 전 인사동의 귀천 카페에 갔던 것이 생각이 났다. 리모델링되기 전의 귀천은 낡고 허름했지만 지금 대오서점처럼 삶의 깊이가 가득했던 곳이다. 귀천이 리모델링이 되었다고 했을 때 정말 아쉬웠는데 대오서점은 이 모습 그대로 오래오래 제자리에 있으면 좋겠다.
폭염이라 십분만 걸어다녀도 더워서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음료는 모두 아이스 커피로 주문했다. 공정무역 원두로 만든 커피인데 맛도 괜찮았고 함께 주신 달고나 사탕과 함께 마시면 더욱 맛있다.
가게를 들어간 후 다시 한 번 더 안쪽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평상시에는 이 곳에서도 커피를 마실 수 있지만 지금은 폭염으로 더워서 바깥 쪽 서점 공간만 카페 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옛스러운 풍경이 좋아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대오서점에서 나와서 통인시장의 엽전 도시락을 이용해보려고 했는데 엽전 운영도 월요일은 쉬다고 한다. 엽전 운영을 안해서 그런지 사람도 얼마 없어서 슬렁슬렁 편안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기름떡볶이가 유명해서 먹어볼까 했지만 그렇게 맛이 있는 떡볶이도 아니고 덥기도 해서 그냥 패스했다.
이후로 청와대 사랑채, 대림미술관, 보안여관 등을 코스로 잡았지만 모두 휴일이어서 그냥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밖에 너무 오래 있어서 쉴만한 곳을 찾다가 마지막 가는 길에 있던 국립고궁박물관에 들렸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재미있었다. 마침 '조선왕실 아기씨의 탄생'이라는 특별전을 전시하고 있어서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었다. 고궁박물관에 가기 전 실내에 들어갈 타이밍을 놓쳐서 너무 더워 힘들었는데 박물관 안이 너무 쾌적해서 정말 기분 좋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서촌에 가기 전에는 가서 보고 싶은 곳들이 많아서 엄청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곳들이 대부분 휴일이라서 아쉬운 마음이 컸다. 사람들이 없어서 조용히 다닐 수 있어서 좋았지만 청와대 사랑채나 보안여관, 대림미술관 등 볼거리 중심으로 서촌을 둘러보고 싶다면 월요일은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다음에 또 와야지.
2코스 : 태극당
고궁박물관을 끝으로 서촌 나들이를 마친 후 경복궁역에서 전철을 타고 태극당이 있는 동대입구역으로 이동했다. 태극당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으로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일본인 제과점에서 일했던 故 신창근씨가 일본 주인장이 남긴 장비를 받아서 명동에 태극당을 연 것이 시초라고 한다.
태극당은 작년에 학생들과 서울여행을 왔을 때 들렀던 곳이다. 작년도에 왔을 때 어딘가 익숙한 공간이다 싶었는데 내 이십대 시절 국립극장에서 공연을 보고 태극당 인근 지역에서 술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새벽까지 술을 먹고 태극당 앞 지하철 입구에서 엽사들을 그렇게 찍어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태극당에서 가장 유명한 사라다빵과 모나카다. 사라다빵은 크기도 엄청 크지만 옛날 스타일의 사라다가 빵 속에 가득 담겨 있어서 먹으면 먹을수록 정겨운 맛을 느낄 수 있다. 엄마도 태극당이 명동에 있을 때 자주 다녔다고 하시는데 오랜만에 다시 오는 태극당 분위기를 보며 감회에 젖으시는 것 같았다.
곧 저녁 먹을 시간이라서 사라다빵과 모나카를 하나씩 구매해서 세사람이 나눠 먹었다. 빵집 옆에 있는 커피솝에서 태극다방커피와 아포카토 모나카, 생강차도 함께 주문했다. 태극다방커피는 그냥 믹스 커피다. 그래도 가정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일회용 커피 믹스보다는 훨씬 더 부드럽고 담백한 맛이 났다. 누구나 다 탈 수 있는 다방 커피이지만 나름 노하우가 있는 것이 아닐까. 태극당의 분위기 때문에 괜히 맛이 다르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3코스 : 동대문 (헌책방 거리, 평화기장, 기독교교문사, 생선골목)
태극당 앞에서 카카오T로 택시를 호출해서 동대문 평화시장으로 이동했다. 엄마가 평화시장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하셨다고 해서 코스로 잡았는데 가까운 거리에 헌책방 거리와 생선 골목이 있어서 저녁을 이 곳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헌책방 거리에서 엘빈토플러의 '제 3의 물결'과 김소진 소설을 발견하고 살까말까 고민하고 있으니 엄마가 자기가 선물하고 싶다고 하셔서 바로 구입했다. 이후에 평화시장을 구경하면서 엄마에게 필요한 하얀 챙모자를 구입했고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기독교 중고 서점도 들렸다. 엄마는 교회를 다니시기 때문에 기독교 서점을 발견한 것을 정말 즐거워하셨다. 엄마가 열심히 책을 찾고 있는 동안 나도 마님과 함께 책을 뒤적이다가 나오는 길에 엄마에게 책 한권을 선물했다.
서점을 나와서 옆 골목에 있는 동대문 생선골목으로 이동해 저녁을 먹었다. 바로 옆 골목에 있는 동대문 대표 메뉴 '닭한마리'도 먹고 싶었지만 태극당에서 먹은 사라다방 때문에 배가 부른 상태라 양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생선 메뉴를 선택했다. 어떤 곳이 맛집인지 몰라서 대충 선택해서 들어갔는데 특화된 맛집 거리라고 하기에는 집에서 손질된 고등어를 사서 굽는 게 더 맛있지 않을까 생각이 될 정도로 특별한 맛을 느끼기 어려웠다. 그래도 골목과 가게의 분위기를 느껴보기 위해 한 번쯤은 이용해 볼만하다.
4코스 : 한강유람선 (뮤직크루즈 P.M 8:30 / 대인 25,000원 / 70분)
저녁을 먹고 나와서 한강유람선을 타기 위해 카카오T를 이용해 택시를 호출했다. 그렇게 먼 거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서울 저녁 타임이라서 이동하는데 30분은 넘게 걸렸다. 원효대교 건너서 우회전 하자마자 바로 하차한 후 열심히 뛰어가서 매표를 하니 간신히 8시 30분 배를 탈 수 있었다.
크루즈는 운행 시간과 테마에 따라 뷔페 크루즈, 뮤직 크루즈, 달빛 크루즈 등 다양한 형식으로 운영이 된다. 우리는 잠실 방향으로 가는 뮤직 크루즈를 이용했는데 70분간 이동하면서 실내의 라이브 연주를 즐길 수 있다. 처음에는 70분이 굉장히 긴 시간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굉장히 빨리 가서 깜작 놀랐다.
처음에는 뷔페 크루즈를 이용하려고 오전에 미리 예약 전화를 했는데 이미 예약 만원 상태라 신청하지 못했다. 뷔페크루즈는 2시간 동안 배 안에서 풍경을 보고 밥도 먹을 수 있는 크루즈다. 가격이 어른 1명당 75,000원으로 제법 비싼 편이지만 배 위에서 뷔페 식사를 한다는 것이 왠지 낭만적으로 느껴저서 꼭 타보고 싶었는데 70분 코스를 이용해보니 뷔페 크루즈를 신청했으면 굉장히 실망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타도 70분이 이렇게 짧은데 2시간 동안 밥도 먹고 풍경도 보려면 아마도 먹다가 체하지 않았을까.
분수쇼도 가기 전에는 볼 게 있을까 싶었지만 막상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제법 볼만했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열심히 사진을 찍는 것을 보면 나만 좋았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좀 더 시원한 날씨에 왔다면 한강의 야경이 훨씬 더 예쁘게 느껴졌을 텐데 밤이 되도 습도가 높아서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한강 유람선은 처음 타본다며 즐거워하시는 엄마 모습을 보니 그런 작은 아쉬움은 바로 사라져버렸다. 날씨든 뭐든, 기회가 될 때 엄마를 모시고 많이많이 돌아다녀야겠다.
유람선 코스를 끝으로 엄마와 함께 하는 두번 째 서울여행이 끝났다. 2년 전 엄마를 모시고 우연찮게 시작한 당일치기 여행인데 생각보다 엄마가 좋아하시고 나도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앞으로 자주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엄마가 청년이던 시절 명동을 중심으로 돌아다녔던 곳이 많아서 여행 중 가끔씩 엄마의 오래된 기억을 엿볼 수 있는 것은 나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다음에는 어디를 갈까. 엄마의 더 어렸을 때 기억이 담겨 있는 흑석동 근처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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