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여행에 대한 낭만이 별로 없는 나에게 아내가 어떤 여행을 가고 싶은지 물어봤다.
색깔이 예쁜 곳
걷기 좋은 곳
대중교통 편리한 곳
마그네틱 있는 곳
동네 슈퍼가 있는 곳
유명하지 않는 곳
말해 놓고도 내 스스로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아내는 며칠 검색을 하더니 기막힌 곳을 찾아냈다며 좋아했다. 그렇게 여주로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정말 색깔이 예뻤고 걷기 좋았고 대중교통이 편리했다. 마그네틱이 있을 법한 관광지가 코로나로 문을 닫아서 구입하지 못했지만 대신 예쁜 배지와 스티커를 구했다. 동네 슈퍼 못지않은 90년대 느낌의 시장 거리를 걸었고 유명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여주는 오래 전에 도자기 엑스포 할 때 잠깐 들른 적 빼고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다. 여행지로 갈만한 곳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생각했던 것보다 볼거리 굉장히 많고 아기자기한 도시 느낌의 여주에 푹 빠졌다. 인구가 12만 명 밖에 되지 않지만 박물관과 미술관을 합하면 총 12개가 있다.
세종대왕릉을 시작으로 한글시장, 여주 두지, 황금룡(점심), 한글빵카페, 도자박물관, 신륵사, 천가장어(저녁), 에이스모텔(숙소), 송학식당(아침)을 순서대로 다녀왔다. 자세한 후기는 나중에 세세하게 적을 예정이고 이번 포스팅에서는 여주로 여행지를 정한 분들을 위한 1박 2일 전용 풀코스를 가볍게 소개하려고 한다.
01. 세종대왕릉
걷기 코스가 굉장히 잘 되어 있다. 입구부터 영릉까지 걸어가는데 조금 거리가 있지만 날씨가 좋으면 기분 좋게 산책할 수 있는 거리다. 주변 풍경이 좋아서 보는 것만으로 안구 정화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입구에 세종대왕과 효종에 대한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박물관과 여민락이라는 작은 카페가 있다. 박물관은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지만 영릉으로 들어가려면 관람료가 별도로 있다. 성인 기준 500원으로 저렴하다.
02. 여주한글시장
한글을 테마로 한 전통시장이다. 서울에 있는 한글간판 거리처럼 조성하려고 한 흔적이 있지만 서울처럼 모든 간판이 한글로 잘 정비되어 있지 않고 어딘가 어설픈 느낌이 있다. 중간중간 한글 관련 벽화와 동상, 건축물들이 있어서 포토존으로 이용하기 좋다. 뭔가 특별한 것은 없지만 90년대로 돌아간 것 같은 재미있는 느낌을 주는 시장이다.
03. 여주 두지
여주의 근대 100년 정도의 기록이 담겨 있는 생활사 문화 박물관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예술가들이 함께 참여해서 만든 작품들이 예쁘게 잘 전시되어 있다. 한글 시장 골목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한글 시장을 간다면 이 곳에 꼭 들르는 것을 추천한다.
03. 황금룡
여주 맛집으로 TV에도 소개되는 집인데 맛집이라고 하기에는 맛이 좀 부족하다. 면이 얇아서 불어버린 느낌이 나고 짬뽕국물이나 짜장면 소스도 간이 약하고 균형감이 없다. 하지만 바삭하고 쫄깃한 탕수육은 정말 맛있다. 육뽕탕이 유명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탕수육과 짬뽕을 따로 주문하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밥을 먹고 싶어서 황금룡이 아닌 '남강식당'이라는 한글 시장 인근 지역의 한식 맛집으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우리가 방문할 당시에 문을 열지 않아서 대안으로 선택한 곳이다. 황금룡은 한글 시장 인근에 있기 때문에 여기에는 남강식당의 지도를 공유한다.
04. 한글빵카페
여주에서 난 찹쌀과 팥으로 만든 빵이다. 처음에는 기대를 별로 하지 않았는데 먹어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경주의 황남빵이나 통영의 꿀방처럼 여주를 대표하는 빵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본다. 빵은 찹쌀로 만들어져 있어서 쫄깃쫄깃하고 안쪽의 팥은 너무 달지 않고 은은하게 달달하다. 찹쌀 도넛을 튀기지 않고 구워서 담백하고 건강한 느낌의 맛이다. 총 5가지의 맛이 있다.
05. 반달미술관
세계 각국의 도자기들과 함께 고려청자, 조선백자의 맥을 잇는 여주 도자기들을 볼 수 잇는 곳이다. 하지만 우리가 갔을 때는 코로나로 인해 문을 닫은 상태였다. 반달미술관 앞에 커다란 공터 자체도 쉬고 놀기에 좋다. 외부 공간 자체가 매우 잘 조성 되어 있어서 잠시 방문만 해도 좋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06. 여주박물관 (신관)
반달미술관을 가지 못해서 바로 옆에 있는 여주 박물관으로 갔다. 우리가 갔을 때는 요하네스 문딩어라는 작가의 초대전이 열리고 있었다. 상설 전시관에는 고대 시대부터 현대까지 여주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볼 것 없는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역사적으로 바라보는 여주는 새롭게 느껴졌다. 역시 역사를 기록하는 도시는 아름답다.
07. 신륵사 (관광단지)
여주 박물관, 반달 미술관 모두 신륵사 관광단지 안에 있다. 아래에 있는 장어집과 숙소, 밥집 모두 관광단지 안에 있다. 산속 깊은 곳에 있는 일반적인 절과 달리 신륵사가 강가에 위치해 있다 보니 절을 보러 오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거대한 단지가 조성이 된 것 같다.
신륵사 자체만 놓고 보면 작은 절이다. 하지만 신륵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자연 풍경들은 세종대왕릉 가는 길 못지않게 잘 꾸며져 있다. 아이들과 걸어 다니면서 놀기에 좋은 아름다운 곳이다.
08. 천가 장어
장어를 많이 먹어본 것은 아니지만 이 집 장어는 확실히 맛이 좋다. 두툼하고 쫄깃해서 씹는 맛이 있고 국내용 참숯을 써서 은은한 화력으로 잘 구워 먹을 수 있다. 셀프 상차림이어서 눈치 보지 않고 반찬을 먹을 수 있고 손님이 더울까 봐 충전용 미니 선풍기도 쓸 수 있게 배려한 점이 인상적이다. 장어 가격은 시세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데 다른 장어집보다 저렴한 편이다.
09. 에이스 모텔
원래 오월 모텔이란 곳에 가려고 했는데 택시 아저씨가 이 곳이 작년에 지어진 신축 건물이라고 추천해주셨다. 아직 홈페이지는 없지만 야놀자와 여기어때를 통해 예약이 가능하다. 모텔이라고 하지만 거의 호텔급 수준의 모텔이라고 보면 된다. 취사시설만 없을 뿐 웬만한 콘도보다 좋다. 단순히 깨끗한 정도가 아니라 공간 구성부터 소품 하나하나까지 주인장의 섬세한 손길이 느껴지는 곳이다. 아침에는 컵라면과 토스트를 먹을 수 있다. 천가 장어 바로 옆에 있다.
10. 송학식당
택시 아저씨는 산너머남촌이라는 곤드레밥 전문점을 추천해주셨지만 우리는 아침에 해장을 하기 위해 송학식당에 가서 소고기 국밥을 시켰다. 이 곳은 그냥 어머니가 해주는 느낌의 한식 밥집인데 반찬이 정말 맛있다. 요즘에는 식당에 들어가서 이렇게 맛있는 반찬을 먹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소고기를 듬뿍 넣어주신 소고기국밥도 매우 맛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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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1박 2일이 아쉬울 정도로 즐겁게 여행을 다녀왔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많아서 다음에 한 번 더 방문할 생각이다. 자가용이 없는 나와 같은 분에게 여주는 대중교통으로도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최고의 여행 코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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